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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수로부인 길 산책 2

(옥원2리~성황당 당산목)

수로부인 길, 2코스는 옥원2리 성황당 앞에서 시작되었다.



[옥원 2리]


옥원2리에서 소공령으로 이어진 이 길은
불세출의 명재상 "황희정승을 만나러 가는 길"로 명명되어 있었다.



[실개천을 건너]


시골스러운 풍경을 발 아래로 내려다 보며
실개천 하나를 건너 도착한 작은 무덤 가에서 점심식사를 가지기로 했다.





삼삼오오 따사로운 잔디밭 주변에 모여 앉아
들고 온 도시락을 펼쳐 점심식사를 마친 후



[봄이 오긴 왔수~!]


따사로운 봄볕에 얼굴을 내민 개구리의 환송을 받으며
청보리 밭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보리밭 사이 길로]


♬ 보리 밭~ 사이 길로~ 걸어가면~♪
♪ 뉘~부르는 ~소리 있어~ ♬ 
가곡 보리 밭을 흥얼거리며





청 보리 밭을 지나 소공령으로 이어진 임도로 올라섰다.
옛날 흙 먼지를 풀풀 날리며 시골버스가 달리던 옛 7번 국도였다는 임도의 



[옛 7번 국도를 걸어라~]


산길 곳곳에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을 위해 피어난
연분홍 진달래꽃들이 활활 꽃불을 일으키며 불타 오르고 있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운 소월(素月)의 진달래꽃에 취해
둥실둥실~ 하늘을 나르는 황홀함으로 산 자락 하나를 올라서니



[드디어 소공대비다..]


황희 정승 공덕비라는 소공대비(召公臺碑)가 나타났다.



[소공대비 비각]


소공(召公)은 중국 주나라 때 태평성대를 이룬 문왕의 아들이름이라는데
백성을 편안케 해준 사람을 부르는 대명사로도 쓰인다고 한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약 60년 동안 여섯 임금을 섬기며
나라와 백성을 사랑했던 청백리 황희정승~!





극심한 흉년이 들었던 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관청의 곡식과 자기의 사재까지 풀어가면서





굶어죽은 이가 한 사람도 없게 만들었던 황희정승의 그 큰 공덕을 기리고자





삼척사람들이 황희정승이 잠깐 쉬어가던 자리에 돌탑을 쌓고,
"소공대비"라는 공덕비를 세운 것이라고 한다.



[멀리 보이는 임원항]


한 폭의 수채화처럼 보이는 임원항을 내려다 보며
소공대비를 떠나 소공령 두 갈래 길에서 우회전하니





다시 연분홍 꽃불이 불타고 있는 진달래 군락지가 눈 앞에 펼쳐졌다.





♬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





산 자락에 피어오른 연분홍 진달래꽃만큼이나
화사한 봄 꽃이 마음 속에서도 활짝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걷고 있는 길 이름의.. "수로부인"이 도대체 누굴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삼국유사』설화 속에 나오는 여인이란다.





신라 "성덕왕"시절이라고 했던가~
강릉태수로 부임하던 순정공(純貞公)이 점심식사를 하던 어느 바닷가에 





천 길이 넘는 기암절벽, 병풍바위가 서 있었는데
절벽 꼭대기에 예쁜 철쭉꽃이 피어 있었단다.





순정공(純貞公)의 부인이었던 수로부인이 그 꽃에 반해
수행하던 아랫사람들에게 꺾어 달라고 부탁했으나





험한 절벽이라 올라갈 수 없다며 거절한 순간 암소를 끌고 그 옆을 지나던 어떤 늙은 노인이 홀연히 나타나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저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는





헌화가(獻花歌)를 바친 후 꽃을 꺾어다 주었다는 옛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수로부인이라고 한다.





그 후 다시 해룡에게 용궁으로 잡혀간 수로부인을 되찾기 위해
거북아~거북아~ 수로를 내 놓아라~! 며 해가(海歌)를 불렀다고 하니





아무튼 설화의 주인공 그 수로부인(水路夫人)이
절세미인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수령 600살 성황당나무 1]


산길을 내려와 만난 절터 골에는 커다란 고목 한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 위풍당당하게 솟아있었다.



[수령 600살 성황당나무 2]


수령이 600살도 넘었다는 성황당나무였다.
성황목을 지나서 만난 마을이 바로 수로부인 길 2코스의 종점, 사기촌 마을이었다.



[산촌마을]


한양에서 대관령을 넘어 강릉과 삼척을 이어주던 
조선시대의 간선도로 중 하나였다는 관동대로 옛길
산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봄 바람을 맞으며





걸었던 그 길 위에서 내려다보았던 동해바다 풍광은 장관이었고
곳곳에서 만난 산촌마을은 고향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으며





수로부인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에 꿈틀꿈틀~ 전설이 되어 살아 숨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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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상열 전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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