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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 만세/봉춘마을무지개

2003년 아버님의 생신

by 전태공 2012. 1. 12.

2003년 아버님의 생신

지난 1월 4일 토요일 우리 아버님께서 생신을 맞으셨다.
회갑(回甲), 진갑(進甲)과 희수(稀壽)의 나이, 칠순(七旬)을 넘어
어느 듯 팔순(八旬)을 눈 앞에 두신 79회 생신을 맞으신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언제 이처럼 우리 아버님께서 팔순(八旬)을 눈앞에 둘만큼 세월이 흘렀을까?
세월의 무상함이 먼저 뼈저리게 느껴졌다.
4남3녀 7남매가 모두 모여 들었다.

평소에는 부모님 두 분만이 계시던 허허로운 방 셋의 단독주택 2층이 모여든 형제자매와 손자, 손녀들로 가득 채워져 북새를 이루었다. 오전부터 며느리 넷이 준비한 푸짐한 생일 저녁상이 차려졌다.

케이크가 놓여지고 7남매 내외와 참석한 손자손녀들이 구름처럼 안방으로 모여 들었다. 케익 촛불에 불이 붙여지고 가득 모인 가족들의 합창이 울려 퍼졌다.

"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할아버지 생일 축하 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가장 어린 초등학교 1학년 손녀, 손자와 함께 아버지께서 촛불을 끄시자~! 이 날에 맞추어 정기휴가를 나온 우리 집안의 장손인 "전재훈"병장을 비롯한 씨알 굵은 손자손녀들이 떼거리로 폭죽을 터트려 댔다.

펑~! 퍼벙, 펑~! 폭죽에서 쏟아져 나온 오색 색종이들이 날리는 가운데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신 아버님의 눈시울에는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눈물이 비치고 있었다.

국비로 영국에 유학을 가, 박사학위를 따고서 한국과학기술원(KIST)에 근무 중에 있는 막내 아들이 가장 먼저 반가운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아버지! 이번에 제가 "세종대학교 기계학부 기계학과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3월부터 강의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와! 온 가족이 기쁜 소식에 박수로 환호를 했다.

둘째 딸이 다음을 이었다. "아버지 오는 9일날~! 손녀 유진이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요~!" 또 한번의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자 여기 저기에서 형제자매들로부터 크고 작은 좋은 소식들이 봇물 터지 듯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장학금을 받았다는 둥, 무슨 자격증을 땄다는 둥, 무슨 상을 받았다는 둥, 하다 못해 집에 기르고 있는 강아지가 살이 쪘다는 시시콜콜 한 얘기까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던데....가지 많은 나무에 왠 소식들이 그처럼 주렁주렁 끝이 없던지?

도란도란, 거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어져 가는 얘기 꽃 속에, 영하 10도를 밑도는 소한 강추위는 어디론가 행방불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우리 아버님께서 자식들로부터 무슨 소식을 제일 기대하고 계신지를... 아들이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손자손녀가 유학을 가고, 장학금을 받았다는 소식도 더할 나위없이 좋은 소식들이지만 그보다 더 아버님께서는 7남매 모두가 아버님 앞에서 이처럼 수다를 떠는 건강한 모습을 항상 소망하고 계신다는 것을...

풍요롭지는 않아도 건강한 생각으로 커준 자식들의 모습과 바라는 소망들이 지금 아버님 눈가를 잔잔하게 적시고 있는 그 눈물 속에 다소곳이 숨겨져 있으리라.

아버님~! 어머님~! 오래오래 만수무강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