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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 만세/봉춘마을무지개

봄비 내리는 날, 감나무 심기

by 전태공 2012. 1. 14.

봄비 내리는 날, 감나무 심기

드르륵~ 창문을 여니 
주륵~주륵~ 봄비가 내리고 있다.
뽀얀 황사와 함께 메말라 가던 땅에 꿀과 같은 단비다.


[군자란]


이런 날에 나무를 심으면 정말 그만 일텐데~!
혼자 중얼중얼 독백을 하다보니 번쩍~ 둔촌동 부모님댁 화단생각이 떠올랐다.


[감나무 심기 전]



손바닥만한 작은 화단이지만 
대추나무 한그루와 앵두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있는 곳~!
그런데 작년에 나무 한그루가 베어져 버려 문 옆에 휑~ 한 작은 공간이 남아있지~!

그래~ 바로 그 곳에 감나무를 심어보자~!


[앵두나무 새싹]



룰루랄라~ 둔촌동으로 달려가는 올림픽도로 길섶에는 
군락을 이룬 노란 개나리들이 기지개를 켜며 팝콘 튀기듯 꽃 몽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자장면을 드시고 싶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천호동 E-마트에서 사간 회 한 접시와 생선초밥은 저녁에 드시라고 아껴두고

 
[어머니와 함께 구덩이 파기]



옛날자장을 시켜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난 후,
어머니와 함께 하남 꽃 시장으로 달려갔다.
곶감을 깎을 수 있는 품종의 감 나무를 찾았으나 없었고 단감 한 그루와 대봉 감 한 그루를 샀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 속에 어머니와 합동작전을 벌려
밑둥만 남아있는 나무 주변을 파 헤쳤다.


[화단, 나무 밑둥 주변]


혹시나 뿌리를 파 내 버릴 수 있을까?하는 엄청난 욕심으로
밑둥 주변을 파 보았으나
언감생심~! 역시나 주변 잔 뿌리만 걷어내는대도 허리를 삐끗해야만 했다.

두런거리는 소리가 궁금하셨던지 
아버지께서 다리를 절룩거리시면서 구경을 나오셨다.


[감나무 구덩이]


"지금~ 무슨 나무 심는거니?"
"아~ 네~! 지금 감나무를 심고 있어요~! 
감 좋아하시는 아버님에게.. 홍시감과 곶감을 드시게 하려구요~! "


[감 나무를 보시고 흐뭇해 하시는 아버지]
 


 "3년 정도 지나면 감이 열기 시작하고 한 5년 지나면 감을 제법 딸 수 있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감을 드실 수 있을 꺼네요.  그러니까..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감나무을 심고 난 후 1]


언제나 무뚝뚝한 인상을 가지고 계신 아버님의 얼굴에 
봄비와도 같은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손바닥만한 화단에 연필 만한 감나무 두 그루를 심어 놓고 나니 화단이 조금 좁다는 느낌이 든다.




이그~! 그래도 몇 년 후, 
이 감나무 두 그루에 가지가 부러질 듯 
주렁주렁 열릴 감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배가 부르는 듯 하다.


[흐뭇해 하시는 어머니]


이 감 나무에 열릴 붉은 단감과 대봉감을 한 소쿠리 따다가 
아버지께 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그런 생각을 하니 정말 기분이 삼삼해진다~!

그래서 새싹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봄비 한 방울이 
영롱한 이슬방울처럼 보이는 것일까?

<끝>

약 3개월 후

토요일 오전 둔촌동을 들렸다.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도너츠와 참외 봉다리 하나 들고 들어서자
제일먼저 
파란 잎이 솟아난 감나무가 반겨주었다.





문쪽에 심은 감나무는 싹이 안난다고 아버지가 절반으로 꺽어버렸었다는데
꺽어진 가지에서도 파란 감잎이 돋아난 것을 보면 그 생명력이 경이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