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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및 해외여행기/2016년도

조선 제6대 임금, 단종(端宗)의 한이 서린 장릉(莊陵)

by 전태공 2016. 7. 14.

조선 제6대 임금, 단종(端宗)의 한이 서린 장릉(莊陵)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의 작은 산 자락에 
비운의 왕인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을 모셔 놓은 장릉(莊陵)이 있다.

 


 

 

태,정,태,세,문,단,세~ 1대왕, 태조 이성계로부터 시작된 조선 왕조는
2대 정종→ 3대 태종→4대 세종→ 5대 문종→ 6대 단종→7대 세조로 이어진다.

 


 

 

그러나 5대 문종의 장남으로 6대 임금이 된 단종은 왕이 된지 1년 반만에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빼앗기고 만다.

 


[단종역시관]

 

 

왕에서 물러난 단종은 그후,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하위지, 이개, 유성원 등
집현전 학사들이 중심이 된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 사건이 탄로나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세조의 동생,금성대군과 순흥부사가 주도한
단종복위음모 사건의 발각으로 결국 청령포에서 사약을 받아 죽고 만다.

 

 

 

 

열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죽임을 당한 단종의 시신은 동강에 버려졌고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세조의 엄명이 떨어졌으나

 

당시 영월호장(戶長)으로 있던 엄흥도라는 분이 말리는 마을사람들에게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해도 나는 달게 받겠다"라고 하며

 


[엄흥도 정여각]

 

 

아들과 함께 야밤에 강물에 떠있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이곳 산 자락에 몰래 암장해주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제11대 중종 때 어명으로 단종의 무덤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던 중

 


[엄흥도 정여각]

 

 

신임 군수가 연거퍼 세 명이나 죽어 나간 영월군수자리에
박충원이라는 분이 새로 부임해서 꾼 첫날밤 꿈에

 

단종이 나타나서 말해준 가시덤불 속 묘를 찾게 되었으며

 


[박충원 낙촌비각]

 

 

죽은 후 240여 년이 지난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 때 와서야 정식으로 복위되면서
단종이라는 묘호로 종묘에 모시게 되었고 능호도 장릉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박충원 낙촌비각]

 

 

매년 한식날을 전후해 열리는 단종제 때 
제물을 준비했다는 공간, 제실건물들을 둘러본다.

 


[제실건물]

 

 

이곳에서는 예로부터 능을 지키는 참봉 등이 기거하면서
왕릉을 지키고 제사용품을 비롯한 각종 도구들을 보관 관리하였다고 한다.

 


 

 

아버지 문종의 즉위로 10살 때 왕세자로 책봉되었던 단종~
그러나 왕이 된지 2년 3개월 만에 아버지 문종이 사망해 버리는 바람에

 


[제실건물]

 

 

12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야욕에 불타는 숙부에게 17세 때 죽임을 당하므로서

 

단종은 조선왕조 전체에서 가장 비극적인 왕이 되고 만것이다.

 


 

 

조선왕조의 모든 왕릉은 한양으로부터 100리 이내에 모셔야 한다는
"경국대전" 규정을 따르지 않은 유일한 왕릉~

 

장릉 입구에 "영천"이라는 이름의 작은 우물하나가 있다.

 


[영천]

 

 

많은 사연을 숨긴체 나지막한 담장에 둘러 싸여있는 이 우물은

단종제사 때 사용되는 물을 얻기위해 팠다고 한다.
 


[영천]

 

 

능 오른쪽으로 "장판옥"이라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충신, 총 268명의 위패를 모셔놓고
그들의 충정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는 건물이다.

 



[장판옥]

 

 

장판옥 건물을 지나 장릉 경내로 들어서 본다.

 

대부분의 왕릉에는 일자형의 신도와 어도가 조성되어 있으나
이곳 장릉에는 ㄱ자형으로 꺾여 있는 것이 조금 색다르다.

 


[신도와 어도로 연결된 제각]

 

 

산 자락 언덕 위에 잠들어 있는 단종 능을 가까이에서 보려면
지그재그로 설치되어 있는 목재 계단을 따라 잠시 올라야 한다.

 


[단종능으로 오르는 길]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산새소리를 들으며 나무계단을 올라서니
울울창창한 숲을 이룬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숲길에 늘어선 소나무들이 꼬부랑 할머니 등처럼 구부러져 있다.
비운의 왕 단종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종능 앞 소나무 숲]

 

 

왼쪽으로 재각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장릉이 자리잡고 있다.

 

 

 

 

임금 자리가 무엇이고 권력이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숙부의 옷소매를 붙들고 "그저 살려만 달라"고 애원하던 단종을
 
매정하게 죽여 버린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의 행실을 보면~

 

 

[단종능]

 

 

천륜에 어긋나는 끔찍한 일들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발생해왔다는 사실에 기분이 씁쓸해진다.

 

 

 

 

외로움과 서러움을 견디지 못할 때마다 영월 관풍매죽루에 올라
자신의 기막힌 신세를 한편의 시로 달랬다는

 

단종(端宗)의 자규시(子規詩) 한 구절이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소쩍새 울다 지친 새벽 봉우리엔 조각달만 밝고
 피를 흘린 듯 봄 골짜기에는 떨어진 꽃들이 붉은데

 

 귀머거리 하늘은 아직도 이 애달픈 호소 듣지 못하고
 어찌하여 근심 많은 이내 사람의 귀만 홀로 밝단 말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