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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및 해외여행기/2016년도

영월 청령포

by 전태공 2016. 10. 10.


영월 청령포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에
조선왕조 제 6대 임금이었던 비운의 왕 단종이 귀양살이했던 청령포가 있다.

 

 

[청령포 선착장]

 


강 건너 청령포로 들어가려면 선착장에서 나룻배에 올라타야 한다.

 


 


선착장을 출발한 배가 휘르르르 뱃머리를 돌리니 벌써 청령포다.
청령포 입구부터 가지를 휘휘 늘어뜨린 노송 숲이 펼쳐진다.

 


[청령포 노송]

 


노송 숲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소나무 향기에 기분이 황홀해진다.

 


 


이곳 청령포는 숙부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란 쿠데타로
즉위한지 1년 반만에 왕위를 찬탈당한 조선 제6대 왕, 단종이 약 2개월 동안 귀양살이했던 곳이다.

 


 


남쪽은 험준한 절벽으로 막혀 있고 동ㆍ북ㆍ서쪽은 서강(西江)이 흐르고 있어
배가 아니면 오갈 수 없는 이곳 오지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단종은

 


 


어느 여름 큰 홍수로 이곳이 물에 잠기자 영월 관풍헌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하고 만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머물렀던 기와집 단종어소도 있고

 

 

[단종어소]

 


단종을 보필하는 궁녀들과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도 있다.

 

 

[행랑채]

 


단종이 기거하던 원래의 건물 자리에
영조임금께서 "단종이 살던 집터가 있었던 곳"을 뜻하는 석비를 세웠으며
(단묘재본부시유지비)

 


[석비]

 


지금 있는 기와집은 승정원 일기 기록에 따라 2000년도에 복원한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임금자리에서 쫒겨나 유배생활을 하게 된 단종~
그 심정이 얼마나 처절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책읽는 단종 모형]

 


그래도 이따금 찾아와 절을 하고 가는 신하들을 보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했을까?

 


[절하는 신하]

 


단송어소 주변에는 울울창창한 노송들이 하늘을 찌르며 숲을 이루고 있다.

 


 


외로움과 한스러웠던 유배생활을 하던 단종의 심정으로 숲길을 거닐어 본다.

 


 


단종 유배지를 보호하기 위해 영조임금 시절~
세워진 청령포 금표비가 나타난다.

 

 

 


동서로 3백척~ 남북으로 490척 이내는 출입을 금한다는 표식이란다.

 


[금표비]

 


여섯명의 부인을 통해 18남 4녀를 얻은 제4대 세종대왕은~
조선 역대 왕들 중에 아들을 가장 많이 둔 왕이다.

 


 


정비 소현왕후 심씨로부터는 8남2녀를 얻었는데
그 중 장남이 제5대 문종이고 차남은 나중에 7대 왕, 세조가 된 수양대군이다.

 

 

 


병약했던 문종은 즉위한지 2년 3개월만에 39세로 세상을 떠났고
그 외아들, 단종이 6대 임금으로 즉위를 했다.

 

 

 


문종의 동생으로 단종의 숙부였던 수양대군은 한명회와 권람 등과 계략을 꾸며
단종을 보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계유정란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 등, 고명대신들을 죽이고 권력을 쟁취한 후~

 


 


단종을 상왕으로 물러나게 한 후 실권을 틀어쥐게 되었다.

그 후 성삼문 박팽년ㆍ하위지ㆍ이개ㆍ유응부ㆍ유성원 등 사육신이 추진한
단종 복위 운동이 탄로나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면서 청령포로 유배되었고

 

 


또다시 수양대군의 동생 금성대군의 단종복위 운동 발각으로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등된 단종은 영월 관루인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실록에는 자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관음송]

 


노송 숲 중앙에는 관음송으로 불리는 나이 600년 정도의
금빛 노송 한그루가 가지를 둘로 뻗으며 서있다.

 


 


유배생활을 하는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았다 해서 "볼 관(觀)"자와
단종의 슬픈 목소리를 들었다 하여 "소리 음(音)"자가 붙은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의 소나무다.

 


 


높이 30m의 관음송은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유배생활을 하던 단종이 둘로 갈라진 이 나무의 줄기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육육봉]

 

 

노송 숲을 가로질러 노산대로 이어진 오르막 길로 들어선다.
서강을 따라 솟아있는 육육봉이 보이는 절벽가에 노산대가 있다.

 

 

[노산대]

 


어린 단종이 한양 땅을 그리워 하며 시름에 잠겼던 곳이라 하여
노산대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언덕 위에 서니~

 


 


평온하게(寧) 지나가는(越) 땅, 영월(寧越) 땅에
어찌하여 단종의 한 맺힌 절규소리가 메아리쳐 오는지 ~

그저 가슴이 먹먹해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