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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내금강

내금강 여행기⑤ [삼불암과 울소]

by 전태공 2016. 1. 2.

내금강 여행기⑤ [삼불암과 울소]

 

○ 백화암 부도

 

 

점심식사가 끝난 오후 2시 반경~ 다시 내금강 도보 트랙킹이 시작된다.

 

오후에는 표훈사 반대방향으로 약 1.7킬로 거리를 내려가면서

백화암 부도와 삼불암 및 울소, 장안사터를 둘러본다고 한다.

 

 

[백화암 부도들]

 

 

초록빛에 물든 전나무 숲길을 조금 내려가니 백화암 부도밭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원래 백화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전쟁 때 불타 버리고

지금은 서산대사 부도 등 7개의 부도와 비석 몇 개만 남아있을 뿐이다.

 

 

[백화암 부도 석재 안내판]

 

 

백화암 부도 밭에 세워진 설명문에는 『서산대사와 사명당은 비록 중이었으나 왜적의 침략을 물리치는

투쟁에서 큰 공을 세워 우리 인민들 속에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잘 보존해야한다.』

 

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교시가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 삼불암(三佛岩)

 

 

백화암 부도밭을 뒤로 하고 전나무 숲을 따라 조금 내려오니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전나무 아래 삼각형 모양의 커다란

문(門) 바위가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모습으로 서있다.

 

 

[삼불암과 문바위]

 

 

이곳이 바로 부처님 세분이 새겨진 바위, 삼불암(三佛岩)이란다.

 

문(門)바위, 오른쪽 바위에는 나옹선사가 새겼다는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미륵불 등 세분 부처님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바위뒷면과 측면에는 60개의 화불(化佛)과 보살 두 분이 새겨져 있었는데

북한 안내원이 설명해준 삼불암의 전설을 들어보니

 

 

[삼불암... 왼쪽부터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미륵불]

 

 

옛날 표훈사에 불사(佛事)를 크게 일으켰다는 "김동"이라는 개성 거사와

장안사의 적을 둔 "나옹"선사 사이에 다툼이 생겼다는데

 

서로를 금강산에서 쫓아내기 위해 표훈사와 장안사의 경계선에 있는

이 문 바위에 진정한 모습의 부처님을 새기는 시합을 해서 진 사람이 금강산을 떠나기로 했단다.

 

 

[삼불암 안내판]

 

 

"나옹"선사는 삼존불을 새기고 "김동"거사는 화불 60개를 새긴 후

장안사와 표훈사의 여러 스님을 불러서 심사를 한 결과

 

윤곽도 또렷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새겨진 "나옹"선사 삼존불이

거칠고 부처 하나의 귀까지 빼먹는 "김동"거사의 화불을 누르고 승리하자

 

 

[삼불암과 문바위]

 

 

시합에 지고서 자기의 욕심에 가책을 느낀 "김동"거사가 "울소"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김동"거사의 세 아들 또한 슬피 울면서 "울소"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다는데

 

다음날 보니 "울소"에 뛰어든 "김동"거사와 그 아들 3형제가

계곡 바닥에 각각 시체바위와 3형제바위로 변해있었다는 슬픈 전설이었다.

 

 

[울소 표지석]

 

 

○ 울소와 3형제 바위

 

 

길은 계속 계곡을 따라 울창한 전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이슬처럼 맑은 만천골 계곡물은 작은 폭포와 새파란 소를 만들면서

산천경계를 이룬 내금강 골짜기를 휘휘~ 잘도 휘돌아 가고있다.

 

 

[울소 옆에 있는 바위... 속도전이라는 글씨 위에 천리마가 새겨져 있다.]

 

 

구비구비 전나무 숲길을 따라 흐르던 만천골 물이

힘차게 뛰는 말 그림과 "속도전"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어느 높은 절벽 아래에

 

 

[울소(명연담 鳴淵潭)]

 

 

작은 폭포가 되어 쏟아져내리니 바로 그 곳이 슬픈 전설을 가진 "울소"이면서

한문으로는 울 명(鳴)자에 못연(淵)자를 쓴 명연담(鳴淵潭)이기도 하다.

 

 

 

 

슬피 우는 연못이라는 명연담(鳴淵潭)답게

물소리 또한 신통하게도 사람의 흐느낌 소리 같다는 "울소" 에는

 

물 깊이가 9미터가 넘는 시리도록 파란 소(沼)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푸른 소(沼)앞에는 삼불암에서 들었던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까이에 "김동"거사의 시체바위가 누워 있고

 

시체바위 위에는 또 3형제 바위가 사이좋게 누워 있다.

 

 

[울소 삼형제 바위]

 

 

○ 내금강의 마지막 코스 장안사 터

 

 

만천(萬川)골 계곡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전나무 숲길을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하는 김 삿갓처럼 허정허정 시(詩)처럼 걸어 내려간다.

 

 

[장안사 터로 내려가는 길]

 

 

언제까지 걸어도 싫증 날 것 같지 않는 심산유곡 숲길은 아쉽게도

장경봉(長慶峰) 아래 잡초 밭에 누워있는 장안사 절터에서 끝나고 만다.

 

길은 계속 이어져 있지만 이어져 있지 않은 사람들 간의 마음은

이어져 있는 길을 그만 멈추도록 만든다.

 

이곳 장안사 터를 마지막으로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전나무]

 

 

금강산 4대 고찰 중에 유점사 다음으로 큰 절이었다는 장안사는

신라 법흥왕 시절, 고구려 승려인 혜량(惠亮)이 창건했다는데

 

 

[장안사 터 안내판]

 

 

고색창연한 건물을 자랑하던 장안사는 마음을 비운 선승처럼

그 많던 요사채와 사찰들을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태워 버리고

 

지금은 수선스러운 잡초 속에서 건물 주춧돌과 부도 하나만을 안고

빈 마음으로 덩그러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그림으로 남아있는 장안사의 모습(김윤겸의 "장안사")]

 

 

꿈결처럼 누벼보았던 내금강 숲 길 그 종점에 남겨 놓아야 했던 아쉬움을 위로라도 하듯

가슴 속 저 깊은 곳으로부터 은은한 가곡 하나가 콧노래가 되어 흘러나온다.

 

 

[장안사 터]

 

 

♪ 장하던 금전벽 위 찬재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 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장안사 터 2]

 

 

아~ 내금강아~! 이제 헤어지면 언제 또 너를 만나볼 수 있을까?

표은사~! 묘길상~! 삼불암아 ~! 잘 있거라~!

 

금강산 정상 비로봉이 개방되고 난 후.. 언젠가 꼭 다시 너를 만나러 오리라 ~!

 

 

<5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