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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찾아서/전라남도 섬

진도 조도여행기 4편(운림산방, 갓바위)

by 전태공 2017. 9. 15.

진도 조도여행기 4편(운림산방, 갓바위)

 

[운림산방]

 

 

진도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운림산방을 둘러보기로 한다.

 

진도에서 가장 높은 해발 485m의 첨찰산 기슭에 자리한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이 말년에 그림을 그렸던 화실로서

 

 

 

 

소치의 손자인 남농 "허건"선생이 복원하여 세상에 알린 곳이다.

 

 

 

 

이곳 운림산방 화맥은 스승인 추사 김정희 선생이 무척 아꼈다는 소치 "허련"선생을 시작으로

미산 "허형"선생을 거쳐 남농 "허건"선생과 그 아래대까지

 

5대에 걸쳐 우리나라 남종화의 명맥을 근 200년 동안 이어가고 있다.

 

 

[운림산방 화맥도]

 

 

운림산방으로 들어서자 한 폭의 수채화같은 풍광이 먼저 반겨준다.

 

첨찰산 아래, 소치선생이 그림을 그렸던 화실이 숨죽이고 앉아있고

그 앞으로 붉은 목백일홍을 거느린 연못, 운림지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운림지]

 

 

연못 중앙, 둥근 섬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목백일홍은

소치선생께서 생전에 심었던 나무라고 한다.

 

 

[소치선생이 심었다는 목백일홍]

 

 

화실 뒤로 돌아 들어가니 소치선생께서 살았던 초가집이 나타난다.

 

 

[소치가옥]

 

 

추사 김정희 선생은 "허련"의 빼어난 시(詩),서(書),화(畵), 솜씨를 보고

"압록강 동쪽에 소치를 따를 만한 사람이 없다."고 극찬했고

 

소치(小痴)라는 아호를 직접 내려주었다고 한다.

 

 

 

 

스승인 추사 김정희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내려와

이곳에 화실과 집을 짓고 그림을 그리며 말년을 보냈다는 소치선생~

 

 

 

 

소치가옥을 지나 소치기념관으로 들어서 본다.

 

 

[매화8곡병]

 

 

소치선생의 많은 작품들과 함께 미산 "허형"선생의 "매화8곡병" 작품도 보이고

 

 

[삼송도]

 

 

남농 "허건"선생의 작품 "삼송도"도 눈에 들어온다.

 

 

 

 

한국 남종화의 본거지인 운림산방을 중심으로 소치집안에서 시작한 그림실력은

그 동안 진도지역에서 국전이상 입상자를 150여명이나 배출해 냈다고 하니

 

진도에서는 개도 붓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헛말이 아닐 듯 하다.

 

 

 

 

붉게 꽃을 피운 목백일홍 나무와 상록수림이

환상의 조화를 이룬 연못의 배웅을 받으며 운림산방에 작별을 고한다.

 

어디선가 진도아리랑 가락이 은은하게 귀로 흘러든다.

 

 

 

 

점심식사 때 반주로 마셨던 진도 홍주의 달콤한 여운 속에

진도민요를 들으며 진도서화들을 구경했으니

 

문자 그대로 진도 3락(樂)을 맛본 근사한 날이 된 것 같다.

 

 

 

 

 

[목포 갓바위]

 

 

진도대교를 건너 목포시내로 들어와 갓바위 앞에 도착한다.

 

 

 

 

천연기념물 제500호로 지정된 갓바위는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응회암으로,

오랜 세월 동안 진행된 풍화작용에 의해 기묘한 모습으로 변한 바위를 말한다.

 

 

[목포 갓바위]

 

 

갓바위를 둘러볼 수 있는 바다 위 해상보행교로 들어서니

삿갓을 쓴 모습의 바위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목포8경 중 하나라는 갓바위는 큰 것이 8m 정도이고 작은 것이 6m 정도다 .

 

 

 

 

어떻게 보면 삿갓을 쓴 스님처럼 보이기도 하고

투구를 쓴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는 갓바위 안내문을 읽어보니

 

 

 

 

갓바위와 관련해 전해지는 전설 두개가 있다고 한다.

 

부처님과 아라한이 이곳을 지나다가 잠시 쉬었을 때

삿갓을 놓고 간 것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그 하나이고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설이 나머지 하나인데 그 전설을 요약해보면

 

" 아주 먼 옛날~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소금을 팔며 살던 가난하지만 착했던 젊은이가

  아버지 병치료를 위해 부잣집에 머슴살이로 들어가 열심히 일했으나

 

  품삯도 못 받고 한 달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단다."

 

 

 

 

" 한달 동안이나 병간호를 못해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만든 어리석음을 한탄하던 젊은이는

 

  저승에서나마 편히 쉴 수 있도록 아버지를 양지바른 곳에 모시려다

  그만 실수로 관을 바다 속에 빠뜨려 버렸고 ~"

 

 

 

 

" 이에 더욱 더 상심한 젊은이는 불효자가 어찌 하늘을 볼 수 있느냐며

  큰 갓을 쓰고 그 자리를 지키다 숨을 거둔 후에

 

  이곳에 두개의 바위가 솟아올라 갓바위가 되었는데

  사람들은 큰 바위를 아버지바위, 작은 바위를 아들바위라고 불렀다"는 전설이다.

 

 

 

 

전설대로 갓을 쓴 바위가 스님바위인지~ 아니면...

아들바위와 아버지바위인지는 몰라도 말없이 서있는 갓바위가 아무튼 기묘하게 생겼다.

 

 

 

 

그런데 이 갓바위가 요즘 바다에서 불어오는 소금기 먹음은 바람과 습기에

암석이 떨어져 나가는 등의 심한 풍화작용으로 훼손되고 있어

 

언젠가 우리 곁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상황에 처해있고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보수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태라니 걱정도 된다.

 

 

 

 

갓바위 부근에 세워진 "유헌"시인의 시 갓바위 한 구절을 조용히 읽어 본다.

 

 " 남자가 흐느낀다.

   바다에 빠져 휘청거리고 있다.

 

  달빛의 무게에 출렁다리 흔들리고

  가로등 속삭임에 불빛 안은 불면의 밤~ "

 

갓바위에서 마무리한 이번 여행~

아무튼 갓바위처럼 우뚝 세워진 또 하나의 추억이 두고두고 떠오를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