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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찾아서/경상남도 섬

통영 한산도 여행기

by 전태공 2012. 9. 27.

통영 한산도 여행기

 

 

○ 연화도에서 통영으로

 

 

연화도를 빠져 나온 배는 하얀 포말을 길게 꼬리에 달고

섬과 섬 사이를 헤집어 가며 본격적인 항해에 들어간다.

 

 

[연화도에서 통영으로]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사이에 보이는 건 오직 섬 뿐이다.

통영으로 들어가는 배와 나오는 배가 서로 스쳐 지나간다.

 

 

[스쳐지나가는 여객선]

 

 

○ 승천하는 용 구름

 

 

뱃머리 앞으로 이름 모를 바위 섬 하나가 나타난다.

하얀 구름 한줄기가 바위 섬 오른쪽 능선에 솟아있다.

 

 

[용 모양의 구름]

 

 

앗~ 그런데 저 구름 좀 봐~!! 혹시 승천하는 용이 아닐까~!

그러네~ 바위섬 능선에 고개를 내민 구름이 백룡(白龍)을 꼭 닮아있다.

 

 

[바위섬 앞으로 몸을 내민 용 모양의 구름]

 

 

머리를 내민 백용이 으르렁으르렁~ 포효를 하며 승천하고 있다.

혹시 연화도 용머리 바위에서 날아온 용은 아닐까~?

 

 

 

 

용머리 바위 절경에 탄성을 쏟아 준 것이 고마워

어쩌면 고별인사라도 해주려고 날아온 용인지도 모른다.

 

앞발을 내민 백룡은 두둥실 두리둥실 하늘을 잘도 날아간다.

 

 

[훨 하늘을 나르는 용 모양의 구름]

 

 

○ 미륵도해협과 통영항

 

 

배는 이제 미륵도와 한산도 사이 해협으로 들어선다.

날렵한 고깃배 한 척이 파란 물을 가르며 카페리 옆을 스쳐간다.

 

 

 

 

통영과 욕지도 사이엔 여객선 항로가 둘이 있는데

 

통영항에서 연화도를 거쳐 욕지도까지 왕복하는 항로와

미륵도 남쪽 끝, 삼덕항에서 욕지도 사이를 직행하는 항로가 있다.

 

 

[미륵도]

 

 

미륵도와 한산도 사이 해협을 지난 배는

연화도 출항 한시간만에 드디어 통영항으로 들어선다.

 

 

[통영항]

 

 

항구 건너편 미륵도 조선공업단지에서는

거대한 배를 건조하는 파란 용접불꽃이 번쩍번쩍 튀고 있다.

 

 

[미륵도 조선단지]

 

 

○ 통영항에서 한산도로

 

 

통영항 부두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50분경~!

 

바로 옆 부두에서는 1시 정각에 출항할 한산도행 배가

금방이라도 떠날 듯한 기세로 부르릉 거리고 있다.

 

 

[한산도행 배에 붙어있는 시]

 

 

육상선수처럼 매표소로 달려 아슬아슬하게 한산도행 표를 산다.

통영에서 한산도까지 왕복 요금은 한 사람당 8,100원, 승용차는 한대당 26,400원이다.

 

출항직전에 가까스로 올라탄 한산도행 배가 금방 출항을 한다.

 

 

[한산도 항로]

 

 

통영항과 한산도 사이에는 1시간에 한번씩 배가 뜬다.

 

아침7시부터 오후 6시까지 통영항에서는 매시 정각에~

한산도에서는 매시 30분에 배가 출항하고 있다.

 

 

[한산만 바다]

 

 

우리를 태운 199톤급 차도선, "시 파라다이스"호는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대첩의 현장, 한산만으로 접어들더니

 

 

[한산도를 향해]

 

 

통영을 출항한지 20여분만에 벌써

바다 위에 세워진 거북선등대를 지나 제승당 항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산도 제승당 앞 거북선 등대]

 

 

○ 제승당으로 가는 길

 

 

제승당 포구 앞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제승당이고

왼쪽 길로 올라서면 한산도 일주, 해안도로를 달릴 수 있다.

 

 

[한산도 관광안내도]

 

 

제승당 도착시간은 오후 1시 반~

나오는 시간을 4시 반으로 예약해 두었으니 빨리 서둘러야 한다.

 

 

 

 

먼저 제승당을 둘러보기 위해 오른쪽 길을 선택한다.

사적 제113호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지" 돌 비석을 지나 한산문으로 들어선다.

 

 

[한산문]

 

 

한산문에서 제승당 사이에 놓여진 탐방로가 참 곱다.

 

 

[제승당 가는 길]

 

 

이곳 제승당은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閑山大捷)을 이룩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충절을 기리는 성지다.

 

 

 

 

선조임금시절 조선수군의 본영으로 해상권을 장악하여

절대절명의 위기를 극복한 호국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정유재란 때 원균의 패전으로 한산진영이 불타버린 후

 

142년이 지난 영조임금 때 이곳에 유허비를 세우면서

운주당(運籌堂) 옛터에 집을 짓고 "제승당"(制勝堂)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제승당 탐방로 길섶에는 낙락장송 노송들로 빽빽하다.

눈앞에 펼쳐진 한산만의 정경 또한 한 폭의 수려한 산수화다.

 

 

 

 

대첩문으로 들어가기 직전, 우물 하나가 나타난다.

 

 

[우물]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이곳에 머물면서 군사들과 함께 마셨던 우물이라는데

바닷가에 있으면서도 물이 전혀 짜지 않는 우물이라고 한다.

 

수군 둘이 지키고 있는 대첩문을 지나 울창한 소나무 숲길로 오른다

 

 

[대첩문]

 

 

○ 제승당(制勝堂)

 

 

충무문을 들어서니 제승당(制勝堂) 앞이다.

제승당이라는 건물 이름은 "승리를 만든다"는 뜻이란다.

 

 

[제승당]

 

 

이순신 장군이 3년 8개월간을 머물렀다는 이 제승당은

조선 수군의 작전을 총괄했던~ 현대의 해군작전사령관실 같은 곳이다.

 

 

[제승당 현판]

 

 

충무공께서는 총 1,491일간의 난중일기 중

1,029일간의 일기를 이곳에 머무르시면서 쓰셨다고 한다.

 

 

 

 

○ 수루(戍樓)

 

 

제승당 오른쪽 바다 쪽에 작은 누각 하나가 서있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시(詩)로 유명한 바로 그 수루(戍樓)다.

 

 

[수루(戍樓)]

 

 

이 수루는 임진왜란 당시 적의 동정을 살피던 일종의 망루로

장군께서 수루에 홀로 앉아 우국충정의 시를 읊었던 곳이기도 하다.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수루에 걸린 충무공의 그 유명한 시조 앞에서

한려수도가 시작되는 한산만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감개가 무량해진다.

 

 

 

 

수루 바로 옆에는 한산대첩도가 세워져 있다.

 

김시민의 "진주대첩", 권율장군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치는 한산대첩은

 

 

[한산대첩도]

 

 

이곳 바다에 학익진을 편 이순신장군의 조선수군이

 

거북선과 총통으로 한산만에서 왜선 47척을 격침시키고

안골포에서 40여척을 불태워버린 대첩으로

 

 

 

 

이 전투에서 대패한 이후, 임진왜란의 원흉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앞으로 조선수군과 경솔하게 싸우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후손통제사행적비]

 

 

○ 충무사(忠武祠)

 

 

충무공후손행적비를 지나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셔 놓은 사당, 충무사 경내로 들어선다.

 

 

 

 

이순신장군의 자취를 기리기 위해 세워 놓은

제승당 유허비(遺墟碑)를 지나니 바로 충무사(忠武祠)다.

 

 

 

[제승당 유허비]

 

 

매년 봄,가을에 통영시민들이 제사를 올리고

한산대첩 기념일에는 해군 작전사령관과 해군사관생도들이 참배한다는

 

충무사 안에는 통제사 관복차림의 이순신장군 영정이 모셔져 있다.

 

 

[충무사]

 

 

200여년 동안의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준비 없이 맞이한

큰 전쟁, 임진왜란에서 나라의 위기를 구한 이순신 장군~!

 

 

[충무공 영정]

 

 

장군이 남겼다는 난중일기 한 구절에서

충무공의 고뇌와 인간적인 감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한산정]

 

 

"가을 기운이 바다에 들어오니 나그네 생각이 어지럽다.

홀로 배 뜸 밑에 앉았노라니 마음이 몹시 산란하다."

 

- 이순신장군 난중일기 중에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