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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공의 글사랑/공모전 입상, 투고

법주사 팔상전의 아름다움을 찾아[2008년도 하반기 문화재청 공모 답사기 입선작 : 2008.12.3]

by 전태공 2011. 12. 21.

법주사 팔상전의 아름다움을 찾아
 
                                                                             [2008년도 하반기 문화재청 공모 답사기 입선작 : 2008.12.3]


백두대간을 따라 쭉 뻗어 내려온 산줄기 하나가 한남 금북정맥으로 분기되는 자리에 우뚝 솟아오른 속리산~! 정이품 송(松)을 품에 안고 신라 천년의 향기가 떠도는 고찰 법주사와 우리나라에 유일한 5층 목조 탑, 팔상전까지 껴안고 있는 속리산은 그래서 그런지 더욱 더 자주 찾아가고 싶은 매혹적인 산이다.

어질어질 멀미를 하며 꼬부랑꼬부랑 구절양장 말티재를 넘어야 간신히 만날 수 있었던 속리산은 이제 새로 개통된 청원~상주 간 고속도로 덕분에 한결 수월하게 달려가 볼 수 있는 가까운 산이 되었다.


어느 화창한 주말, 법주사 팔상전을 만나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새벽길을 나섰다. 경부고속도로 청원I/C에서 새로 뚫린 상주행 고속도로로 올라타 눈 깜박 할 사이에 속리산 나들목을 빠져 나오니 만산홍엽을 거느린 찬란한 가을이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 마중을 나와 주었다.



[일주문 앞에서 낙엽을 쓸어내고 있는 여인]


찌루~찌루~ 찌루루~! 청아한 산새소리를 벗 삼아 수북이 깔려있는 낙엽을 밟으며 법주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바스락이는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사바세계를 벗어나 보려는 해탈의 소리가 되어 들려왔다. 

잠시 속세(俗)와 이별(離)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들어선 속리산(俗離山) 숲길의 분위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잔잔하고 그윽했다. 온 산야(山野)에 울긋불긋 추색(秋色)이 물든 가을이라서 그런가 그윽한 분위기에는 화려한 아름다움까지 흠뻑 묻어있었다. 





백색 가을국화가 와글와글 피어있는 길섶을 따라 제멋대로 서 있는 낙락장송 소나무 숲을 벗어나니 단아한 모습의 정이품송이 붉은 가을빛 속에서 길손을 맞아주었다.

몇 년 전, 휘몰아쳐온 몹쓸 태풍으로 비록 가지 한쪽을 뭉텅 꺾여버리기는 했어도 정이품송이 가지고 있는 그 고고한 기품만큼은 추호도 꺽임이 없어 보였다.





속세와 경계를 이룬다는 일주문(一柱門) 앞에서는 가을 여인 하나가 우수수 떨어져 내린 낙엽을 쓸어내고 있었다. 일주문에서 법주사까지 이어진 오리(五里) 숲길로 접어들었다. 구불구불 옛이야기처럼 이어져 간 오리 숲길 구비마다 농익은 만추의 가을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오색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한 단풍나무 군락지로 들어서자 저 높은 곳으로부터 쏟아져 내린 아침 햇살이 부채 살처럼 산란하며 빛살무늬 토기문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낙엽을 흠뻑 뒤집어 쓴 사내천(舍乃川)을 지나 구름에 달 가듯이 돌다리를 건너는 어느 스님의 뒤를 따라 수정교를 건너니 바로 법주사 금강문이었다.



[법주사 수정교를 건너는 스님]

금강문을 지나 들어선 시도유형문화제 제46호, 천왕문(天王門)에는 동서남북 인간세계의 기쁨과 노여움, 사랑과 즐거움을 좌지우지한다는 사천왕이 갑옷에 무기를 들고 지옥의 악귀를 밟고 선 무서운 모습으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지은 죄도 없으면서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쭈삣쭈삣~ 사천왕의 눈 밑을 지나 천왕문을 통과하니 드디어 신라 진흥왕시절 의신조사가 창건했다는 법주사가 환한 모습으로 눈 앞에 펼쳐져 왔다.





서리서리 드리워진 찬란한 가을빛은 법주사 경내에도 가득했다. 부여의 무량사 및 구례의 화엄사와 함께 3대불전 중의 하나라는 보물 제915호, 법주사 대웅보전 앞 마당에는 세밀하게 조각된 두 마리의 사자가 앞발을 치켜들고 팔각형 모양의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모습의 국보 제5호, 쌍사자 석등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사찰 왼편에는 높이 38미터에 달한다는 거대한 청동미륵대불이 아침 햇살을 받아 찬란한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웅장한 청동미륵대불이 인자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법주사 중심에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5층 목조탑, 팔상전이 빼어난 균형미를 자랑하며 위풍당당하게 서있었다.



[법주사 청동미륵대불과 팔상전] 


동녘에 둥실 떠오른 아침햇살을 받고 서 있는 국보55호, 팔상전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목탑(木塔)이 가진 다섯 개 층의 처마와 추녀들이 서로 어우러져 만들어 낸 우아한 곡선미는 저절로 탄성이 자아질 정도로 곱고 신비로웠다.
 
1층에서 5층까지 각층의 동서남북 네 모서리에 날개를 활짝 핀 학(鶴) 모양의 귀공포가 하늘을 콕 찌르며 추녀머리를 들어 올리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들어 올려 진 추녀는 전혀 앙탈하지 않는 저절로 처진 듯한 처마곡선을 너그럽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가졌다는 S 라인 보다 더욱 더 섬세하고 편안한 느낌의 U 라인을 가진 팔상전 처마곡선은 1층에서 5층까지 다섯 개의 지붕이 서로 포개진 듯 이어져 있음에도 전혀 억지를 부리지 않는 넉넉한 부드러움으로 춤추는 무녀의 옷자락이 되어 추녀 끝에 매달려 댕그렁댕그렁~ 울어대는 풍경소리와도 조화를 이룰 듯 보였다.



[법주사 팔상전과 범종각]


안정감을 주는 나지막한 화강석 기단 위에 다섯 개 층의 목조탑이 세워진 팔상전은 탑 1층 기초로부터 5층 중도리까지 뻥 뚫린 가운데 축에 중심기둥이 서서 탑을 받쳐주고 있고 그 심주(心柱)를 중심으로 모서리기둥과 변두리기둥이 각층 지붕의 무게를 분담하고 있는 구조로 지어졌다고 한다.

또한 지붕은 탑 꼭대기를 중심으로 네 방향의 사모지붕을 이루면서 각층의 서까래를 받치고 있는 도리와 기둥머리 사이에는 지붕의 무게를 기둥에 고루 전달해주면서 키높이 구두뒤축처럼 건물높이를 올려주고 맵시까지 부릴 줄 아는 공포들이 너울너울 설치되어 있었는데 1층에서 4층까지는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식으로 되어있는 반면 마지막 5층은 사이사이 헛공포까지 끼어 넣은 다포식 구조로 기교를 부리면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5층 목탑 중 1, 2층은 가로 세로가 다섯 칸이고 3, 4층은 세 칸, 그리고 5층은 두 칸의 크기라는데 한 칸을 1.8미터로 보았을 때 1,2층은 9미터 정도이고 3,4층은 5.4미터 그리고 5층은 3.6미터 정도의 탑 폭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크기의 비율로 지어진 팔상전 5층탑이 이처럼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구도로 보이는 것은 아마도 21미터가 넘는 탑 높이에 5:3:2 비율로 좁혀져 간 탑 폭의 비율이 최적의 황금비를 이루어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기하학적인 구도로 지어졌다는 피라밋이 이집트의 정서라면 아름다운 곡선미를 연출해 낸 팔상전의 비율은 우리 정서에 가장 잘 맞는 최적의 황금률이 아닐까?



[법주사 팔상전과 청동미륵대불]


팔상전에는 사리를 모신 공간도 있고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공간도 있지만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에서부터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궁궐 밖 세상을 보고 출가를 하여 설산에서 고행을 하다가 보리수 아래에서 성불 후,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기까지의 부처님 생애를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 그렸다는 여덟 폭의 팔상도(八相圖)가 목탑 중앙에 보관되어 있음으로서 팔상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법주사 팔상전은 신라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창건한 이후 고려시대와 이조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번 불에도 타고 여러 차례의 중수와 중창도 받으면서 오늘 날까지 꿋꿋하게 살아남아준 보물 중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탑은 우리 고유의 전통 목조탑의 원형을 짐작하게 해주는 단 하나밖에 없는 목구조 탑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귀하고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인 것인가~!



[속리산 가을 숲길] 


꼭 지켜내야 할 역사적인 이 목조 건물을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하여 대대손손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이 목조건물을 어떻게 보존해 나가야 하고 또 가장 취약한 불로부터 어떻게 지켜주어야 할 것인가가 우리에게 던져진 가장 큰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일순간에 불태워 버린 숭례문처럼 결코 허망하게 다시 잃어 버려서는 안 되는 소중한 이 목조유산을 우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꼭 보존해 나가야 할 것이다.

기쁨과 환희의 색깔로 시작했던 봄과 울울창창(鬱鬱蒼蒼) 검푸른 생명력의 여름을 거친 가을이 바스락~ 바스락~ 익어가고 있는 법주사 경내에는 팔상전의 곡선미에 순화되어 번뇌도 욕심도 벗어 버린 유연하고 동그란 마음들이 훨훨~ 날고 있었고 산(山)이 속세를 떠나지 않았는데 속세가 산(山)을 떠났다는 산비이속 속리산(山非離俗 俗離山)이라는 최치원의 싯구절도 둥실둥실 떠돌고 있었다.

이처럼 가을 속의 법주사는 속리산 숲의 단풍과 산들바람에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까지 절묘하게 어우러져 "비발디"의 "사계(四季)" 중, 가을 곡(曲)을 웅장하게 연주하고 있었다.


<끝>

 

[문화재청 답사기 공모 입선작(2008년 12월 3일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