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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기/베트남 다낭

베트남 다낭 여행기 3편 (후에왕궁, 카이딘황제릉)

by 전태공 2018. 12. 29.

베트남 다낭 여행기 3편 (후에왕궁, 카이딘황제릉)

 

 

○ 후에 왕궁 

 

 

후에 구시가지에 위치한 왕궁 부근 주차장에 도착할 무렵 잠시 멈추어주었던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다.

둘레가 11㎞에 달한다는 후에왕궁을 둘러보기 위해 전동차에 올라탄다.

 

 

[전동차]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달리던 전동차가 잠시 멈춘 곳에서 내려 왕궁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응우엔 왕조, 황제 13명이 나라를 다스렸던 후에 왕궁(Dai Noi)은

베트남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되었을 정도로 후에의 소중한 유적이다.

 

 

 

 

해자를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 높은 성벽으로 둘러 싸인 후에성으로 들어선다.

 

 

 

 

곧 이어 왕궁의 정문인 응오문(正午門)이 나타난다.

동,서,남,북 네 방향에 설치된 문 중에서 남문에 해당하는 응오문에는 다섯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중앙의 노란색 출입구는 왕만 출입할 수 있으며 그 옆 양쪽의 출입구는 문무대신들이...

그리고 외곽 양쪽에 있는 출입구는 일반 신하들이 통행했다고 한다.

 

 

[응오문]

 

 

이 응오문은 2대 민망왕 때 축조된 높이 17m 정도의 3층 건물로

1층은 석재구조, 2층과 3층은 목조 기와집 구조로 지어진 우리나라 광화문 같은 문이다.

 

 

 

 

응오문을 지나 노란 꽃이 피어난 연못 중앙다리를 건너

 

 

 

 

태화문 앞에 세워진 두 개의 패루를 지난다.

 

첫번째 패루에는 "정직탕평(正直蕩平)"이라는 4자성어가

두번째 패루에는 "고명유구(高明悠久)"라는 4자성어가 쓰여있다.

 

정직을 최선의 정책으로 하여 탕평책을 펼치라는 등의 임금이 명심해야 할 신조(信條)라고 한다.

 

 

 

 

패루 두 개를 지나니 바로 태화전이다.

 

응우엔 왕조, 13명의 황제가 즉위식을 하거나 공식접견, 황실 의례등을 거행했던 정전으로

우리나라 궁궐로치면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태화전 내부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태화전]

 

 

계속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태화전 뒤쪽에 펼쳐진 넓은 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근정전과 건성전, 자금성 등 수 많은 왕궁건물들이 있던 자리지만

치열했던 베트남전쟁 구정공세 당시 불타 버려 광장으로 변해 버린 곳이다.

 

 

[광장]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 후에왕궁의 원상회복을 위해

유네스코 등에서 기금지원을 하여 지금도 하나하나 복원공사 중에 있다고 한다.

 

 

 

 

묘문을 들어서니 3층짜리 누각 현임각(顯臨閣)이 나타난다.

 

 

[현임각 현판]

 

 

현임각 건너편에는 우리나라 종묘에 해당하는 세조묘(世祖廟)가 서있다.

 

단층 건물로 지어진 이 세조묘에는 응우엔 왕조, 총 13명의 황제 중

일찍 세상을 떠난 5대~6대 황제와 마지막 13대 황제를 제외한 10명의 황제 위폐가 모셔져 있다.

 

 

[세조묘]

 

 

현임각 건물 앞에는 역대 황제의 이름이 새겨진 9개의 커다란 청동 솥이 줄지어 늘어서있다.

이 청동 세 발 솥의 무게는 2톤 내외라고 하는데 가장 무거운 것은 2,7톤이나 된다고 한다.

 

 

[청동솥]

 

 

베트남 제2대 황제인 민망황제 때 만들었다는 이 청동 솥에는

응우엔 황실의 번영과 영속성을 기원하는 의미로 해, 달, 별, 산, 강, 구름 등을 새겼다고 한다.

 

 

 

 

계속 쏟아지는 비를 뚫고 북을 모셔 놓은 2층누각 건물을 지난다.

 

 

[법고 누각]

 

 

휴~ 비는 쉬지 않고 내리고..배는 고파오고.....아직 볼 것은 많이 남았지만

후에왕궁 투어는 여기까지 하고 그만 숭성문을 통해 왕궁을 빠져 나온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우선 점심부터 먹어야 할 것 같다.

 

 

[숭성문]

 

 

○ 카이딘 황제릉

 

 

맛있는 한식으로 점심을 포식한 후 다시 전동카를 타고 카이딘황제릉을 찾아간다.

세차게 내리던 비는 다행히 뚝 멈추어 주었다. 휴~ 다행이다.

 

 

 

 

베트남 응우엔 왕조의 12번째 황제였던 카이딘왕은 31살의 나이로 황제에 등극했으나

 

정사에는 별 관심이 없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면서 프랑스에 우호적인 정책을 펴서

죽을 때까지 베트남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았던 최악의 왕이었다고 한다.

 

 

 

 

카이딘황제릉 구조는 입구 계단 두 개를 오르면 문인석, 무인석이 있는 비각이 나타나고

비각 양쪽으로 설치된 계단을 오르면 황제의 묘역인 천정궁을 만나도록 되어 있다.

 

 

 

 

먼저 우뚝 솟은 패루 앞, 1단계 계단부터 오른다.

 

 

 

 

세 줄로 조성된 계단 양쪽으로 영원한 삶과 번영을 의미한다는 용조형물들이 엎드려 있다.

 

 

 

 

앞발로 여의주를 감싸며 계단에 엎드린 용 모습이 우리나라 해태 모습으로 보인다.

 

 

 

 

두번째 계단을 다시 오르니 비각건물이 나타난다.

 

 

[비각건물]

 

 

비각건물 앞에는 문인석, 무인석, 시종석, 동물석상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있다.

 

앞 열에는 도포를 입은 문인석과 칼을 든 무인석이 줄지어 있고

그 뒷줄에 삿갓모자를 쓴 시종들과 함께 말과 코끼리 석상들이 서있다.

 

 

 

 

비각 안에는 카이딘 황제의 아들인 13대 황제 바오다이가 아버지 업적을 기록한 공덕비가 들어있다.

비록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던 황제라도 아들의 눈에는 공적이 많은 왕으로 보였나 보다.

 

 

[공적비]

 

 

비각을 지나 또 하나의 돌계단을 올라서니 카이딘황제릉 천정궁(淺定宮)이다.

 

 

[천정궁]

 

 

아들 바오다이가 건설한 이 카이딘황제릉은 유럽의 고딕양식과 중국 청나라양식

인도 힌두사원 양식 등 동서양 건축양식이 혼재된 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이다.

 

 

 

 

우측 계단으로 올라 천정궁 안으로 들어서 본다.

 

카이딘 황제의 동상과 위패가 모셔진 곳 계성전(啓成殿)이 나타난다.

황제의 사진이 걸린 계성전입구 주변 벽과 천장이 무척 화려하다.

 

 

[계성전]

 

 

화려하게 장식된 계성전 제단 위에는 황동으로 만든 카이딘 황제의 앉아있는 모습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형형색색의 도자기와 유리 모자이크로 장식된 벽과 바닥이 무척 화려하다.

 

 

[카이딘황제 동상]

 

 

계성전 옆방에는 카이딘 황제의 재위시절에 여러 나라에서 받았던 선물들과

황제가 직접 사용했던 칼이나 향로들이 전시되어 있다.

 

 

 

 

공덕비를 세우고 능 내부를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 놓으면 뭐하나~

역사적으로 전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신세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