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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공의 글사랑/공모전 입상, 투고

잡지가 준 귀한 선물[전 국민「잡지읽기 대회」수기 공모 입선작]

by 전태공 2011. 12. 21.

잡지가 준 귀한 선물
                                  
                                                      
- 전상열(全相烈)

                                                                                 (사)한국잡지협회 주최 근대잡지 효시 "少年(소년)"지 창간 100주년 기념
                                                                                 전 국민「잡지읽기 대회」수기 공모 입선작

○ 어느 크리스마스 선물

내가 잡지와 처음으로 인연다운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6년 전인 1962년,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그 해 겨울, 친구네 집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보내고 있던 나를 친구형님이 부르더니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커다란 상자 두 개를 불쑥 내밀었다.

덩치 큰 선물에 깜짝 놀라 열어본 상자 안에는 발행시기가 지난 과월호 잡지 수십 권이 가득 들어있었다. 책 수집이 취미였던 친구 형님께서 그 동안 모아놓았던 잡지 중, 중복 수집된 "학원" 잡지 몇 권과 "사상계"잡지 수십 권을 추려서 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었다.





잡지 한 권, 만만하게 사서 읽어볼 형편이 안 되었던 그 시절에 친구형님으로부터 받았던 그 수십 권의 헌 잡지 선물은 지금 돌이켜보면 나를 다양하고 풍요로운 잡지 세계 속으로 푹 빠져들게 만든 시발점이 되었고 책과 가깝도록 해준 정말로 고마운 계기가 되었다.





헌 잡지 수십 권을 선물로 받은 후, 나는 틈나는 대로 그 잡지들을 뒤적이며 읽어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헌 잡지의 대부분을 이루었던 "사상계"라는 잡지는 언감생심, 중학생이 읽기에는 너무나 어려워 몇 권 끼어있던 만만한 "학원" 잡지만 붙들고 한 권 한 권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비록 과월호였지만 “학원”잡지는 읽기도 편했고 내용도 정말 흥미진진했다.





그 잡지 속에는 그 때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다양하고 흥미로운 정보가 가득했고 이런 저런 연재소설들과 수많은 토막기사들은 손에서 놓기 싫을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그 무렵부터 조금씩 잡지 읽는 재미에 심취해가던 나는 어느 순간 잡지의 풍요로운 세계 속으로 풍덩 빠져들기 시작했다.


○ 과월호 잡지를 찾아서

가지고 있던 "학원"잡지 몇 권을 모두 읽어버린 나는 이제 읽지 못한 "학원"잡지 과월호들을 구하기 위해 틈나는 대로 헌 책방을 누비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그 시절, 헌 책방들은 주변 곳곳에 참 많이도 널려있었다.

헌 책방들은 고물장수로부터 넘겨받은 넝마 같은 헌책들을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책을 사려는 사람들이 직접 그 헌책들을 뒤져 책을 찾아 사가던 그런 시절이었다. 아현동 로터리 주변과 공덕동 철길 옆 골목에도 헌 책방들이 무척 많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그 헌책방들을 이 잡듯이 뒤지며 "학원"잡지 과월호를 찾는 일은 날이 갈수록 점점 즐거운 취미로 변해갔다.





보물찾기라도 하듯 매일같이 한 권 두 권, 모아가던 "학원"잡지가 한 달여 만에 수십 권이나 수집되었다. 새로운 과월호를 찾은 날이면 흡사 애인이라도 만난 듯, 밤늦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으며 다 읽고 나면 다시 이 빠진 과월호들을 어서 빨리 구해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쳐 올랐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하루하루 나는 책 수집마니아로 변해갔고 어느 순간 지금까지 발행되었던 “학원”잡지들을 창간호부터 모두 구해 버리고 말겠다는 목표까지 세우게 되었다.





"학원"잡지가 창간된 1952년 11월호부터 근 10년 간 발행된 과월호 목록을 연도별 월별로 만들어 놓고 본격적으로 헌 잡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평소에 잘 다니던 단골 헌책방은 물론 청계천 헌책방 거리와 다른 지역에 있는 헌책방까지 수소문해 다니면서 새로운 과월호를 발견하는 대로 해당 월호의 목록을 지워가며 수집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구하지 못한 과월호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나 1952년에서 1955년 까지 약 3~4년 동안 발행된 과월호들은 정말로 구하기가 힘이 들었다. 





산더미 같은 헌 책 더미를 뒤적이다 새로운 과월호라도 하나 발견하게 되면 야호~ 환호성을 질렀고 어느 변두리에서 새로운 헌책방이라도 발견하는 날이면 신천지라도 발견한 듯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짤랑거리는 가위소리를 내며 동네 골목을 나서는 엿장수 리어카에서 헌 잡지 뭉치 하나를 발견한 나는 나도 모르게 기쁨의 환호성을 외치고 말았다. 





엿장수 리어카에 놓여있는 누렇게 변한 헌 잡지 뭉텅이 속에 놀랍게도 그렇게 찾아 헤매던 "학원"잡지 창간호를 비롯하여, 1952년에서 1953년까지 발행된 금싸라기 같은 학원잡지 과월호 수십 권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엿장수에게는 파지에 불과했지만 나에게는 천금같이 귀한 그 헌 잡지들을 손에 넣은 기쁨에 그날 밤 나는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 책 수집 마니아로 변해

그렇게 수집해 나가던 "학원"잡지는 창간호 다음호와 1953년 6월호 등, 두 권을 제외하고 모두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결국 끝까지 구하지 못한 그 두 권을 찾아 헤매면서 이제는 다른 잡지에로 관심이 옮아가기 시작했다.

비록 읽기가 힘들었지만 수십 권을 선물로 받았던 "사상계" 잡지 또한 목록을 만들어 수집해 나갔고 헌책방을 뒤지다 만난 "새벗"과 "여원", "세대"와 "현대문학"을 비롯하여 "아리랑"과 "야담과 실화"등의 잡지는 물론 일반 소설이나 수필집까지도 닥치는 대로 수집해 나갔다. 문자 그대로 잡지와 책 수집마니아로 자연스럽게 변신해 갔던 것이다.





그렇게 수집했던 잡지와 책들은 좁은 내방은 물론 다락과 헛간까지도 가득 채워져 갔다. 철 지나고 빛바랜 낡은 "학원" 잡지들을 연도별 월별로 가지런히 정돈해 놓고 "꺼꾸리군 장다리군"이라는 만화도 읽었고, 검은별, 마경천리라는 흥미진진한 연재소설들도 읽었으며 독자문예란에서 “유경환”, “마종기” 시인이 학창시절에 썼던 금싸라기 같은 시(詩)들도 접해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에는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사상계"까지도 조금씩 읽어 내려갈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늘면서 나는 더욱 더 헌 잡지들과 친해져 갔다.





○ 사나이대장부가 흘렸던 눈물


그렇게 잡지와 책을 수집하기 시작한지 8년여가 지난 1970년, 입영통지서를 받은 나는 그 동안 수집했던 수많은 헌책들을 광 속에 쌓아둔 채 군에 입대를 해야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내가 군에 입대하고 얼마 안 되어 그 동안 계속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오던 우리 집에 더욱 더 급박한 상황이 펼쳐지면서 살고 있던 집을 줄여 단칸 셋방으로 급히 이사를 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펼쳐졌고 그 경황 중에 그 동안 천신만고 끝에 수집해 놓았던 나에게는 금싸라기와도 같았던 천여 권의 잡지와 책들이 한 순간에 어느 고물장수에게 팔려나가 버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입대한지 근 1년 만에 첫 휴가를 나와, 알게 된 경천동지할 상황 앞에 나는 그저 말을 잃어버리고 몇 시간 동안을 울먹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떻게 모았던 잡지들이고 책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져 버리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은 현실 앞에 망연자실, 땅을 치며 통곡을 해보았지만 이미 날아가 버린 새였고 엎질러져 버린 물이었다.

어렵게 수집했던 그 많은 책들을 잃어버리고 휴가기간 내내 정신적 공황상태 속에서 방황하던 나는 사라져버린 잡지들을 한 권이라도 다시 구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동분서주 해보았지만 그저 부질없는 몸짓에 불과할 뿐이었다. 





○ 잡지가 남겨준 귀한 선물들


10년 가까이 힘겹게 모았던 잡지와 책들을 그렇게 허망하게 잃어버리고서 그 힘든 군 생활 속에서도 결코 흘리지 않았던 사나이 대장부의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했지만 그러나 나에게 다가왔다가 사라져간 그 잡지들은 그냥 헛되게 스쳐 지나갔던 것이 아니라 나에게 정말로 소중하고 값진 많은 선물들을 남겨주고 떠나갔다.

수백 권의 그 잡지들은 나로 하여금 많은 글들을 읽게 해주었고 책과 친하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형성된 습관은 군을 제대하고 취직과 결혼을 하면서 살아간 서른 살, 이립(而立)의 나이 내내, 꾸준히 잡지와 책을 사서 읽도록 해주었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된 후에는 아이들에게 매달 "소년중앙"이나 "새소년" 같은 잡지들을 사다 주어 아이들을 명랑 만화의 주인공 "꺼벙이"처럼 밝게 키워주도록 했다.

그리고 또 불혹(不惑)의 나이 마흔과 지천명(知天命)의 나이 쉰을 살아가면서 계속 월간잡지들을 손에서 놓지 않게 해주었고 이순(耳順)의 나이 문턱에서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헌 잡지와 책을 찾아 황학동과 청계천의 헌 책방 거리를 누비는 근사한 취미를 갖게 해준 정말로 귀한 선물을 남겨주었다.





그때 그 시절 수집했던 수많은 잡지들 중, 지금도 "학원"잡지나 "사상계", "새벗"잡지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며 아련한 고향생각과도 같은 향수가 소용돌이쳐오는 것은 비록 그 것들이 낡고 빛바랜 헌 잡지들에 불과했지만 나의 젊은 날의 노트를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일구어 주고 세상사는 많은 지혜를 일깨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래 성장 동력을 키워준 스승과도 같았던 귀한 책들이었기 때문이리라~! 

번 주말에도 나는 또 추억의 옛날 잡지들을 찾아 황학동 헌 책방 거리를 유유자적(悠悠自適) 누벼봐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