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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및 해외여행기/2020년도

여주 신륵사(神勒寺)~

by 전태공 2020. 7. 25.

여주 신륵사(神勒寺)~

 

 

오랜 만에 경기도 여주시 봉미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신륵사를 찾아 나선다.

 

심산유곡에 숨어있는 보통의 절과는 달리 신륵사는 강변에 둥지를 튼 절이다.

봉미산 신륵사라고 쓰여진 일주문을 들어선다.

 

 

[신륵사 일주문]

 

 

일주문 양쪽 기둥에 교훈적인 글귀의 주련(柱聯)이 붙어있다.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 삼일동안 닦은 마음 천년의 보배되고~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 백년동안 탐한 재물 하루아침에 티끌된다.』

 

마음을 닦으면 보배가 되고 재물을 탐하면 티끌밖에 안남는다는

심오한 뜻을 음미해보며 경내로 향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라는 신륵사~

노랗게 흐드러진 루드베키아 꽃 군락지를 지나니 불이문이 나타난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요, 세속과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며,

 

선악(善惡), 깨끗함과 더러움, 등등 상대적 개념에 대한 모든 대상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라는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선다.

 

 

[신륵사 불이문]

 

 

절 앞으로 남한강의 여주 구간을 말하는 여강(驪江)이 흐른다.

흐르는 강물을 따라 유유자적, 서두를 것 없는 발걸음을 옮긴다.

 

 

 

 

극락보전과 강월헌을 가리키는 이정표 앞에서 먼저 강월헌 방향으로 들어선다.

 

 

 

 

6각 정자인 강월헌(江月軒)은 풍광이 수려한 강변 바위자락 끝에 소리없이 앉아있다.

강월헌은 고려 말의 고승, 나옹선사의 당호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전해진다.

 

 

[신륵사 강월헌]

 

 

강월헌에 올라 나옹선사가 지은 그 유명한 시 "청산은 나를 보고"를 읊조려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聊無愛而無憎兮(료무애이무증혜)]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 』

 

 

 

 

강월헌 바로 옆에는 나지막한 삼층석탑 하나가 외롭게 서있다.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한 나옹선사 시신을 화장했던 자리에 세운 일종의 다비탑이란다.

 

 

[삼층석탑]

 

 

강월헌 앞의 나지막한 언덕 위에는

고려시대 유일의 벽돌 탑이라는 다층전탑(塼塔)이 우뚝 솟아있다.

 

 

[신륵사 다층전탑]

 

 

경내로 들어서는 우측 언덕자락에는 나옹선사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660여년 묵은 유명한 은행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이 은행나무가 유명한 것은 신기하게도 은행나무 가지 한가운데에

관세음보살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의 고사목형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자 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서 모든 중생들의 괴로움을 구원하시고자

바로 이곳 신륵사 은행 나무에 고사목형상으로 나타났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관세음보살 기도형상 고목]

 

 

신륵사 극락보존 앞에는 구룡루가 수문장처럼 입구를 지키고 있다.

 

9마리의 용이 머문다는 의미의 구룡루(九龍樓)~!

신륵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의식의 집전 장소로 사용되었던 장소란다.

 

 

 

[신륵사 구룡루]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신륵사~!

 

원효대사의 꿈에 나타난 노인이 연못을 가리키며 신성한 가람이 설 곳이라고 일러주자~

그 꿈을 꾼 원효대사가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 했지만 번번이 뜻대로 되지 않아

 

7일동안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렸더니 연못에서 9마리의 용이 승천했고~

그 이후 이곳에 절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멋진 향나무 한그루가 서있는 신륵사 극락보전으로 들어선다.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인 극락보전은 신륵사의 가장 중심부에 있다.

 

고려 우왕 때 마암(馬巖)이라는 바위 부근에서 용마(龍馬)가 나타나자

 

나옹선사가 신력으로 다스렸다 하여 신력의 신(神)자에 제압의 뜻인 륵(勒)자를 합쳐

신륵사라는 사찰이름이 탄생했다고 한다.

 

 

[극락보전 앞 향나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을 가진 극락보전은

숙종임금 때 지어진 후 정조임금 때 수리보수가 완료된 건물이라고 한다.

 

 

[신륵사 극락보전]

 

 

극락보전 앞에는 고려시대 유물이라는 다층석탑하나가 우뚝 서있다.

 

탑은 일반적인 석탑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사용된 돌이 화강석이 아닌 대리석이 사용되었다는 것이 이 탑의 특징이다.

 

 

[신륵사 다층석탑]

 

 

극락보전 왼쪽에는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조사당(祖師堂)이 숨어있다.

 

보물 제180호로 지정된 조사당에는 나옹선사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지공(指空)과 무학(無學)대사의 영정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신륵사 조사당]

 

 

조사당 앞에는 무학대사가 스승 나옹선사를 그리며 심었다는

수령 600년이 넘은 향나무가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목조지장삼존(木造地藏三尊)을 비롯한 시왕상(十王像)과 판관(判官) 등

총 29구의 상이 봉안되어 있는 명부전을 돌아 나오니

 

 

[명부전]

 

 

네 가지 타악기인 법고와 목어, 운판, 범종 등 사물(四物 )이 있는 범종각(梵鐘閣)이 모습을 들어낸다.

 

 

[신륵사 범종루]

 

 

조선시대 4대 나루의 하나인 조포나루가 있었던 강변에 자리한 신륵사를 뒤로 하고

돌아 나오는 등 뒤로 신륵사에서 울리 퍼지는 저녁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