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 및 해외여행기/2012년도

밀양 영남루(嶺南樓) 둘러보기

by 전태공 2012. 12. 7.

밀양 영남루(嶺南樓) 둘러보기

 

 

○ 영남루(嶺南樓)

 

 

통영을 떠나 밀양에 도착한 시간은

뉘엿뉘엿 하루 해가 저물고 있는 오후 5시경이다.

 

오후 6시 5분 출발하는 KTX열차 시간까지는 아직 1시간정도가 남아있다.

 

 

 

 

이 금싸라기같은 자투리 여유시간을 어찌 허투루 보낼 수 있으랴~!

그렇지~ 밀양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영남루가 아니던가~!

 

영남루를 만나보는 것으로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영남루]

 

 

영남루는 석양빛에 누렇게 빛나는 언덕 위에 다소곳이 업드려 있다.

 

진주의 촉석루(矗石樓), 평양의 부벽루(浮碧樓)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누각으로 불린다는 영남루(嶺南樓)~!

 

 

 

 

이층 누각 형태의 영남루는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리듯

동쪽과 서쪽에 침류각과 능파각(凌波閣)이라는 부속누각을 거느리고 있다.

 

 

[영남루 오른쪽으로 침류각과 연결된 계단이 보인다.]

 

 

영남루와 침류각 사이에는 달 월(月)자 모양의 목재 계단 월랑(月廊)이 ~

3단으로 단 차이가 나는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3단 계단, 월랑]

 

 

영남루 앞에는 낙동강 지류, 밀양강이 흐르고 있고

마당 가에 늘어선 돌 비석 옆에는 천진궁으로 들어서는 만덕문이 세워져 있다.

 

 

[만덕문]

 

 

이 천진궁은 단군 왕검의 위패와 역대 8왕조 위패를 모신 곳으로

매년 3월과 10월에 이곳에서 어천대제와 개천대제가 열린다고 한다.

 

 

[천진궁]

 

 

2층 누각 형태의 영남루는 조선시대 밀양도호부의 객사건물로

귀한 손님을 맞거나 휴식을 취할 때 사용하던 일종의 영빈관이었다고 한다.

 

 

 

 

영남루라는 누각이름은 신라시대 시절, 이 곳 터에 있었던

영남사라는 사찰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남루 정면에 서서 잠시 누각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본다.

 

건물 처마 중앙에는 영남루(嶺南樓)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그 좌우에 교남명루(橋南名樓), 강좌웅부(江左雄府)라고 쓰여진 현판이 걸려있다.

 

 

 

 

교남명루(橋南名樓)는 "경상도 남쪽에 있는 이름 높은 누각" 이라는 뜻이고

강좌웅부(江左雄府)는 "강 좌측에 있는 아름다운 큰 고을"이라는 뜻이란다.

 

 

[능파각]

 

 

부속 누각, 능파각 목재계단을 올라 영남루 이층마루로 들어선다.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천장 여기저기에 많은 현판들이 걸려있다.

 

 

 

 

현판(懸板)과 편액(扁額)의 차이를 물어보니~

편액(扁額)이란~ 건물 문 위, 이마부분에 써 놓은 글씨를 뜻하고

 

현판이란~ 글씨를 써놓은 널판지를 말하는데

따라서 어느 건물이든 편액은 하나밖에 없고 현판은 여러 개 있을 수가 있단다.

 

 

 

 

천장에 걸린 현판 중에는 옛날 어느 밀양부사의 어린 두 아들이 썼다는

"영남루(嶺南樓)"와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는 현판도 보인다.

 

 

[7살 아이가 쓴 영남루]

 

 

"영남루(嶺南樓)"라는 현판은 7살짜리 어린 아들이 쓴 것이고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는 현판은 11살짜리 아들이 쓴 것이라고 전해진다.

 

 

[11살 아이가 쓴 영남제일루]

 

 

아니 그 어린 아이들의 붓글씨 솜씨가 어찌 이토록 어른스러울까?

그저 경탄의 탄성만 내뱉어진다.

 

 

 

 

영남루 마루에 서서 소리없이 흐르는 밀양강을 내려보고 있으니~

문득 "영남루"를 노래한 임의백의 옛 시조 하나가 떠오른다.

 

 

 

 

" 은빛 촛불 붉은 난간 밤은 점점 깊어만 가고

  앉으니 바람과 이슬은 옷깃에 가득하다.

 

  맑은 퉁소 한 곡조에 찬 강물 목이 메이고

  가늘게 빛나는 달빛은 창창하게 고목 숲을 비춘다. "

 

 

[박시춘 생가]

 

 

○ 박시춘선생 생가

 

 

영남루 담장 밖으로 나오니 작은 초가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 대중가요사의 큰 별인 고 박시춘 선생의 생가라고 한다.

 

 

 

 

이 집은 밀양 출신 작곡가로 정부로부터 문화훈장까지 수상받은

박시춘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밀양시에서 복원해준 옛집이라는데

 

작은 초가집 옆에는 박시춘선생 동상도 하나 세워져 있다.

 

 

 

 

살아 생전에 무려 3,000여곡을 작곡하셨다는 선생의 작품에는

 

"애수의 소야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신라의 달밤", "비 내리는 고모령"과

"굳세어라 금순아","전선야곡","전우여 잘 자라" 등 귀에 익은 곡이 즐비하다.

 

 

 

 

생가 마당에는 박시춘 선생의 대표작 "애수의 소야곡" 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작은 스피커에서는 애수의 소야곡이 애잔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노래비]

 

 

♬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 만은~ ♪

♪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 그 누가 불러주나 휘파람소리~ ♩

 

 

 

 

○ 아랑각

 

 

애수의 소야곡을 귀로 들으며 아랑각으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이번에는 밀양아리랑 노래비를 만난다.

 

♬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소 ~♪

 

♩ 정든 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 해~ ♬

♪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

♩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소~ ♬

 

 

[밀양아리랑 비]

 

 

밀양 아리랑의 유래가 되었다는 "아랑 전설"의 주인공~

아랑 낭자를 모셨다는 아랑각은 영남루 아래 밀양강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아랑각 앞 고목]

 

 

전설만큼이나 오래되어 보이는 고목 앞을 지나

들어선 아랑각에 있는 아랑처녀 영정이 참 예쁘게 보인다.

 

 

[아랑낭자 상]

 

 

밀양 태수의 딸로 인물도 빼어나고 심성도 곱기로 소문 난 아랑처녀는

어느날 유모와 함께 영남루로 달 구경을 나왔다가

 

겁탈하려고 나타난 괴한에게 저항하다가 죽음을 당했고

괴한은 아랑의 시체를 영남루 아래 대나무 숲에 버렸다고 한다.

 

 

[아랑각]

 

 

그 후 부임한 사또마다 밤에 나타난 아랑 처녀의 원귀에 놀라 죽었는데

 

어느 담력이 센 신관사또 하나가 아랑의 억울함을 듣고

한을 풀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아랑 전설"의 주요 줄거리다.

 

 

 

 

얼마 전, 막을 내린 티비 드라마 "아랑 사또전"를 보면

 

억울하게 죽은 밀양부사의 딸 이서림과 어머니를 찾아 밀양으로 온 김은오가

저승과 이승을 오가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낸 것인데~

 

이 드라마 역시 밀양의 이 "아랑 전설"을 원형으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아랑낭자와 유모]

 

 

귀로의 자투리 시간에 밀양 영남루와 박시춘선생 생가를 만나고~

아랑 처녀의 전설까지 들으며 여행을 마무리하였으니~

 

생각지도 않은 큰 횡재에 그저 마음이 뿌듯해 지기만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