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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및 해외여행기/2015년도

동해안 봄 나들이 2편[오죽헌(烏竹軒)]

by 전태공 2015. 4. 28.
 

동해안 봄 나들이 2편[오죽헌(烏竹軒)]

 

 

○ 오죽헌(烏竹軒)

 

 

뒷뜰에 검은 대나무 숲이 있어

까마귀 오(烏)자에... 대나무 죽(竹)자의 이름인 오죽헌(烏竹軒)은...

 

 

[오죽헌 입구]

 

 

조선의 대학자인 율곡 선생이 태어나서 자란 집으로서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친정 집이었다.

 

 

 

 

책을 펼쳐 읽고 계시는 율곡선생의 동상을 지나

 

 

[율곡선생 동상]

 

 

도착한 오죽헌 앞에 문성사와 오죽헌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오죽헌 오른쪽에 율곡 이이선생께서 태어나신 방, 몽룡실이 있다.

 

율곡 어머니, 신사임당께서 용꿈을 꾸고 선생을 낳았다고 하여

몽룡실(夢龍室)이라는 이름이 붙은 방이다.

 

 

[오죽헌 본채]

 

 

"비례물시(非禮勿視)"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비례물청(非禮勿聽)"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비례물언(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비례물동(非禮勿動)"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사자수신지요야(四者修身之要也)" 이 네 가지는 몸을 닦는 요점이다.

 

라고 말씀하셨던 결몽요결 글귀 하나가 보인다.

예를 모르는 지금의 정치인들이 더욱 더 명심해야 할 글귀같다.

 

 

[결몽요결 중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데는 마땅히 화평(和平)하고 공경(恭敬)하기를 힘써야 하며

친구를 사귀는 데는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고 착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을 골라서 사귀어야 한다."는

 

말씀도 눈에 들어온다.

 

 

 

 

인조임금이 율곡 선생에게 내렸던 "문성"이라는 시호이름을 딴 문성사는

율곡 이이 선생의 영정을 모셔 놓은 사당이다.

 

 

[율곡선생 영정을 모신 사당 문성사]

 

 

문성사 뒤편, 정원에는 검은 대나무 오죽이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검은 대나무, 오죽]

 

 

"연전무악세(硯田無惡歲) : 독서와 글 쓰기에는 흉년이 없고"

 

오죽헌 사랑채 툇마루 기둥에 여러 글귀의 주련이 걸려있다.

추사 김정희 글씨를 새겨 놓은 것이다.

 

 

[기둥에 걸린 글씨들(주련)]

 

 

안채와 바깥채를 둘러본다.

 

 

 

 

이 오죽헌은 형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의 집이었으나

둘째 사위, "이사온"이라는 분에게 이 집을 물려주었고

 

 

 

 

"이사온"은 슬하에 딸 다섯을 두었는데

그 중 둘째 딸이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다.

 

 

 

 

신사임당은 결혼 후 상속받은 이 집에서 살았는데

사임당이 33세에 되던 해, 이곳 몽룡실에서 셋째 아들 율곡 선생을 출산했다고 한다.

 

 

 

 

○ 율곡기념관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봄 꽃을 지나

오죽헌 건너편에 있는 율곡기념관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슬비에 젖은 오죽헌 전경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오죽헌 전경]

 

 

이 율곡기념관은 1965년도에 1차 건립되었다가 2012년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율곡기념관 전경]

 

 

이 기념관에는 오죽헌에 보관하고 있었던 소장유물들과

이창용 전 서울대교수가 기증한 유물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시와 문장 및 그림에 탁월한 솜씨를 가졌던 신사임당의 "초충도"와 수묵화 및

율곡 이이(栗谷 李珥) 선생과 관련된 수많은 유물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신사임당 그림]

 

 

13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했던 율곡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로서

이퇴계선생과 함께 으뜸가는 학자로 추앙받으며 개혁을 설파한 성리학의 대가였다.

 

 

[율곡선생 초상]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

율곡선생이 현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병조판서로 재직하고 있을 때

 

군인 십만 명을 미리 양성해 놓자는 십만양병론(十萬養兵論)을

선조임금께 건의했으나 정치적으로 묵살당하고 만다.

 

 

 

 

"불출십년당유토붕지화(不出十年當有土崩之禍)"

10년이 못 가서 땅이 무너지는 화가 있을 것이라며

 

미리 10만명의 군사를 양성하여 도성에 2만, 8도에 1만씩을 두워

그들의 세금을 덜어주고 무예를 훈련시켜 교대로 도성을 지키게 하였다가

 

변란이 있을 경우, 10만 명이 합쳐 지키도록 하지 않으면

전쟁에 지고 말 것이라는 선견지명의 건의였다.

 

 

[율곡선생 필체]

 

 

오늘날 5천원권과 5만원권 화폐에

신사임당과 율곡선생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선견지명의 지혜를 배우라는 뜻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