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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기/태국 치앙마이

태국 치앙마이 여행 10편(왕실 장수기원탑)

by 전태공 2015. 11. 23.

태국 치앙마이 여행 10편(왕실 장수기원탑)

 

 

○ 왕실 장수기원탑

 

 

"도이 인타논"산을 뒤로 하고 하산을 하다가

해발 2,300미터 지점의 "체타파크"에 있는 국왕과 왕비의 장수 기원탑을 만난다.

 

 

["왕의 탑"]

 

 

이곳에는 왕의 탑(Naphamethanidon)과

왕비의 탑(Naphaphon Phumisi)이 서로 마주 보며 서있다.

 

 

[장수기원탑 약도]

 

 

이 장수기원탑은 1987년 국왕의 60세 환갑과 1992년 왕비의 60세 환갑 때

국왕부부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태국국민성금으로 태국 왕실공군에서 건립했다고 한다.

 

 

[왕비의 초상화]

 

 

왼쪽에 서있는 것이 "왕의 탑"이고 오른쪽에 서있는 것이 "왕비의 탑"이다.

 

 

["왕의 탑"]

 

 

먼저 "왕의 탑"을 둘러보기 위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다.

 

 

["왕의 탑"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니 드넓게 펼쳐진 천상의 꽃밭이 눈에 들어온다.

초록빛 잔디밭과 어우러진 붉은 꽃밭이 정말 아름답다.

 

 

[천상의 화원]

 

 

먼저 "왕의 탑"인 프라탓 나파메타니돈(Naphamethanidon)으로 들어서본다.

 

 

 

 

"왕의 탑" 안에는 제법 넓은 불당이 조성되어 있다.

가부좌를 틀고 계신 부처님 앞에서 여인 하나가 기도를 드리고 있다.

 

 

["왕의 탑" 내부]

 

 

현재의 국왕인 푸미폰 왕을 태국에서는 살아있는 부처라고 부른다니

연꽃에 둘러싸인 부처님은 아마도 국왕을 상징하고 있는 듯 하다.

 

 

 

 

벽에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해탈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부조들이 붙어있다.

 

 

["왕의 탑"벽의 부조]

 

 

"왕의 탑"에서 건너편에 보이는 탑이 "왕비의 탑"이다.

"왕비의 탑" 꼭대기를 한 손으로 만져보도록 한 후

 

 

[멀리보이는 "왕비의 탑"]

 

 

"왕비의 탑"을 향해 계단을 내려선다.

 

 

 

 

에스컬레이터 탑승장 옆에서 천상의 화원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화원에서 바라 본 "왕의 탑"]

 

 

초록빛 수목들과 어우러진 예쁜 꽃밭들이 극락세계를 연출하고 있다.

 

 

 

 

해발 2,300미터의 고지에서 내려다보이는 조망 또한 멋지다.

어느 틈에 밀려왔는지 흰 뭉게구름이 하늘을 가득 뒤덮고 있다.

 

 

 

 

화원 산책로를 걷는 발걸음이 꼭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초록빛 교목 너머로 멀리 조금 전에 들렸던 "왕의 탑"이 눈에 들어온다.

 

 

[수목 너머로 보이는 "왕의 탑"]

 

 

"왕의 탑" 왼쪽에 서있는 "왕비의 탑"까지 탑 2개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 "왕비의 탑"과 오른쪽 "왕의 탑"]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 "도이 인타논"에 조성해 놓은 왕과 왕비의 장수기원탑~!

도대체 태국사람들의 국왕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국민 95%가 부처님을 공경하는 불교 국가인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한 번도 강대국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살아온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나라로서

 

 

 

 

헌법 체계 아래서 세습되거나 선임된 군주를 인정하는 정부 형태인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를 채택하고 있는 태국에서는

 

 

["왕비의 탑"]

 

 

헌법에서 정한 제한된 권력을 가진 국왕을 국가원수로 모시고 있으나

실질적인 정치는 국민이 선출한 총리가 하는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다.

 

 

 

 

오늘 날, 태국사람들의 국왕에 대한 존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태국 방방곡곡에 국왕부부의 초상화가 걸릴 정도로 국왕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다고 한다.

 

 

 

 

1927년생인 푸미폰 국왕은 현재 88세의 고령으로서

1946년 국왕으로 즉위한 이래 69년째 재위 중인 태국 역사상 최장수 국왕으로~

 

 

["왕비의 탑"]

 

 

이처럼 현 태국국왕이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은

푸미폰 국왕이 즉위한 이후 국민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소통에 가장 역점을 두었고

 

 

 

 

다른 군주와는 달리 정치적으로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재위 기간 중 태국에서 일어난 19차례의 쿠데타 때마다

푸미폰 국왕이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국의 균형을 잘 맞췄다고 한다.

 

 

 

 

푸미폰 국왕의 영향력이 특히 전세계에 알려진 사건은

1973년 10월~ 군사독재에 반대하며 일어난 학생 시위 때라고 한다.

 

 

["왕비의 탑"과  "왕의 탑"]

 

 

그 당시 푸미폰 국왕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지지하여

군대에 쫓기던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왕궁 문을 개방했으며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수친다 총리와

시위대를 이끈 잠롱을 왕궁으로 불러들여 갈등을 수습했는데~

 

 

 

 

그 길로 해외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수친다 총리가

국왕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이 태국 전역에 TV로 중계되어

 

태국 국왕의 카리스마가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푸미폰 국왕은 현 태국 짜끄리 왕조의 9번째 왕으로

국왕의 트레이드 마크인 카메라와 지도, 연필 등 3종 세트를 손에 들고

 

 

["왕비의 탑"]

 

 

태국의 동북부와 북부, 남부, 서부 등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서민들의 목소리를 들은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태국 국왕부부 장수기원탑을 한바퀴 돌아보면서

 

나라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과연 백성들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는지를

부러운 마음으로 구구절절 느껴본 하루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