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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및 해외여행기/2015년도

강진 영랑생가 및 시문학파 기념관

by 전태공 2015. 8. 21.

 

강진 영랑생가 및 시문학파 기념관

 

 

○ 강진 영랑생가

 

 

금일도를 찾아가는 길목인 전라남도 강진에서

시(詩) "모란이 피기까지는" 으로 잘 알려진 영랑시인 생가로 발길을 옮긴다.

 

생가 초입에 붉은 베롱나무 꽃이 흐드러져있다.

 

 

[베롱나무]

 

 

영랑선생이 살았던 마을의 우물~ 탑골샘을 지나니

사립문 너머로 시골스러운 초가가 눈에 들어온다.

 

 

[탑골샘]

 

 

영랑산생의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 시비가 입구에 서있다.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가치

풀 아래 우슴짓는 샘물가치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 우에

오날 하로 하날을 우러르고 십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붓그럼가치

시(詩)의 가슴을 살프시 젓는 물결가치

보드레한 에메랄드 얄게 흐르는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 십다

 

비록 현대 맞춤법과는 조금 틀리는 부분들도 있지만

영랑선생의 부드러운 감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시(詩)다.

 

 

 

 

맴맴맴맴~

쏟아져 내리는 매미소리를 뚫고 영랑생가로 들어선다.

 

 

[생가입구]

 

 

문간채를 지나니 안채가 나타난다.

영랑선생이 태어나 시인의 삶을 살게 했던 아늑한 보금자리다.

 

 

[안채]

 

 

본채의 작은 침실에 영랑선생의 영정이 놓여있다.

 

 

 

 

 

감나무가 서있는 장독대 주변에서도 영랑선생의 시가 느껴진다.

 

"오메, 단풍들 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메, 단풍들 것네."

 

추석이 내일모래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메, 단풍들 것네."

 

 

[생가 장독대]

 

 

영랑 선생이 작품 활동을 했던 사랑채에서 선생의 체취가 물씬 풍겨나온다.

2남 3녀중 장남으로 이곳에서 태어나신 영랑 김윤식선생은

 

1950년 6.25동란 중 맞은 포탄 파편상으로

47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주옥같은 시 80여편을 발표하였는데

 

 

[사랑채]

 

 

그중 60여편이 해방 전, 일제의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쓴 작품이라고 한다.

 

 

 

 

○ 시문학파(詩文學派) 기념관

 

 

영랑선생 생가를 뒤로하고 영랑과 다산의 예던길(가던길)을 따라

생가 근처의 시문학파 기념관으로 향한다.

 

 

 

 

시문학파(詩文學派) 라고 하는 것은 1930년대 창간된 시전문지 『시문학』

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주도했던 9명의 시인들을 말하는데

 

 

 

 

시문학파의 중심이 된 『시문학』동인지는

용아 박용철시인과 영랑 김윤식시인의 의기투합으로 시작되어~

 

정지용시인과 위당 정인보시인, 연포 이하윤시인이 참여함으로써

창간호가 발간되었고

 

 

[시문학파 시인들]

 

 

뒤이어 수주 변영로시인과 김현구시인이 제2호에

신석정시인과 허보시인이 제3호에 동참함으로써 결성되었다고 한다.

 

 

 

 

전시관에는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다는 1825년 발행, 여명(黎明)과

1928년도 발행, 여시(如是) 창간호와 함께

 

동방평론, 현대문학, 자유문학 창간호 등

한국 시문학사의 산실역할을 했던 귀한 문예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문예지 창간호]

 

 

최초로 시문학파 결성을 주도했던 영랑(永郞), 김윤식(金允植)선생과

용아(龍兒), 박용철(朴龍喆)선생이 창간한 『시문학』지는

 

우리나라에 순수문학의 뿌리를 내리게 한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박용철, 김윤식]

 

 

가곡으로도 불리는 시(詩) “향수”로 잘 알려진 정지용(鄭芝溶)시인은

1930년 김영랑과 박용철이 창간한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1945년 해방이 되자 이화여대 교수 및 문과과장과 『경향신문』주간으로

고정란 「여적(餘適)」과 사설을 맡다가 6·25 때 납북되었다고 한다.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절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라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서울 명동의 명문가 외아들로 출생한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선생은

창씨개명 등에 저항하여 산 속에 은둔까지 하셨던 분으로

 

광복 후 국학대학 초대 학장을 지내면서 「광복절 노래」를 짓기도 했으나

역시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어 폭격으로 타계했다고 한다.

 

 

광복절 노래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정인보]

 

 

강원도에서 태어난 연포(蓮圃) 이하윤(異河潤)은

일본 호세이대학에 유학 법문학부 문학과를 마쳤고

 

유학 중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를 두루 공부한 후~

 

경성방송국 편성계와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 등을 지냈으며

동국대와 성균관대,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다고 한다.

 

 

[이하윤]

 

 

경기도 부천에서 출생한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산호세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신문학 초창기에 등장한 신시의 선구자 역할을 하면서

압축된 시구 속에 서정과 상징을 담은 기교를 보인 분으로 알려져 있다.

 

논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김현구(金炫耉)는

1930년 5월 영랑과 용아의 추천으로 『시문학』2호에

 

「님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를 발표했던 분이라고 한다.

 

님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렀습니다

한숨에도 불려갈듯 보-하니 떠있는

은빛 아지랑이 깨어 흐른 머언 산둘레

구비 구비 놓인 길은 하얗게 빛납니다

 

님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렀습니다.

헤어진 섬돌에 떨든 햇살도 사라지고

밤빛이 어슴어슴 들우에 깔리여갑니다.

 

홋홋달른 이 얼골 식혀줄 바람도 없는 것을

님이여 가이 없는 나의마음을 아르십니까

 

 

[김현구]

 

 

전북 부안에서 태어난 신석정(辛錫正)은

동국대 전신인 불교전문강원 국문학과에서 수학했으며

 

1931년 『시문학』제3호에 참여, 작품 활동을 본격화하신 분이다.

 

임께서 부르시면

 

임께서 부르시면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신석정]

 

 

평북 출신인 허보(許保)는 일본 호세이대학(法政大學)을 졸업하였고

1931년 조선일보에 시 「성외(城外)의 낙조」로 등단한 분이란다.

 

 

[허보]

 

 

시문학파 시인들의 유물과 작품 등, 백여 점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시문학파 기념관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옛 시인들의 정취에 빠져있다 보니 나 자신도

서정 시인이 된 듯한 착각 속에 잠시 동안 빠져볼 수 있었다.

 

 

 

 

여행이란 이처럼 언제나 낯설고 새로운 것을 만나서

가슴을 설레어 보는 것이 아닐까?

 

 

 

 

공복에 만난 남도지방의 맛깔스러운 진수성찬 음식상 앞에서

영랑선생을 기리는 강진사람들의 맛깔스러운 마음까지 덩달아 느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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