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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공의 글사랑/공모전 입상, 투고

창덕궁 산책[문화재청 시행, 2007세계문화유산 답사기 공모전 입상(11위) 수상작]

by 전태공 2011. 12. 2.
 [문화재청 시행, 2007세계문화유산 답사기 공모전 입상(11위) 수상작]


창덕궁 산책


                                                                                                                                                    글 : 전상열


궁궐을 산책하는 일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더구나 꽃이라도 피어있는 계절이라면 금상(錦上)에 첨화(添花)같은 일일 것이다.

2007년 4월 중순을 넘어선 어느 일요일 오후, 서울에서 경복궁 다음으로 풍수지리가 좋고

우리가 비원(秘苑)으로 더 많이 알고 있는 창덕궁을 오랜 만에 산책해 보았다.




근교 산에서는 막바지 봄이 연분홍 진달래 꽃불을 몰고 산봉우리를 향해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창덕궁 안의 봄은 어느 듯 연초록빛 물결에 밀려 스물스물 조금씩 사그라지는 중이다.




비단결 같은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비단 금(錦)자에 내 천(川)자 이름을 가졌다는 수백 년 된 돌다리 금천교(錦川橋)에는 비단결 같은 맑은 물 대신, 비단결 같은 봄꽃들이 곱게 피어올라 있다.


 




금천교와 진선문을 지나 이름만 들어도 그저 자애롭게만 느껴지는 인정전(仁政殿)으로 들어선다.

창덕궁의 정전(政殿)으로 왕의 즉위식이나 국가의 중요 행사를 치렀다는 인정전 앞에는 오랜 세월동안 나라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을 세 줄의 돌길, 삼도(三道)가 무겁게 엎드려 있다. 임금님만이 다닐 수 있었던 중앙 어도(御道) 좌우에는 정1품에서 정9품까지의 벼슬을 가진 신하들이 품격 순으로 서서 몸을 조아렸다는 품계석이 나란히 줄을 맞추고 서 있다.




왕이 앉아있는 방향을 중심으로 동쪽 품계석에 도열했던 문관(文官)들을 동반(東班)이라 불렀고 서쪽에 도열했단 무관(武官)들을 서반(西班)이라 불렀다는데 바로 이 동반과 서반, 양쪽 반을 통 털어 양반이라고 한다던가.

 



임금님이 앉아 계시던 인정전 용상(龍床) 뒤에는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 폭포, 파도, 소나무 등이 잘 어우러진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가 멋드러지게 그려져 있고 궁궐 지붕 추녀마루에는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모양을 한 잡상들이 궁 안으로 밀려들지도 모르는 온갖 잡귀들을 훠이훠이 쫓아내고 있다.




인정전을 나와 궁궐 내 유일한 청기와 건물 선정전(宣政殿) 옆길을 따라 임금님과 왕비께서 주무셨던 침소, 대조전(大造殿)으로 들어선다.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용(龍)이 주무시고 계시는 거룩한 곳에 어찌 다른 용이 있을 수 있느냐? 해서 지붕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았다는 대조전 후원에는 화사한 봄이 용의 꼬리처럼 출렁거리고 있다.




임금님 전용변기, 매화통 앞을 지나 대조전 후원으로 돌아서니 봉황으로 상징된 왕과 왕비의 장수를 기원하는 학과 거북 등 십장생이 조각된 고풍스러운 옛 굴뚝이 지나간 세월 속에 숨어있을 역사적 비화들을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다.




연분홍 수양벚꽃이 휘휘~ 늘어져 있는 담장 끝에는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봄볕 속에 꾸벅꾸벅 낙선재(樂善齋)가 졸고 있다.




낙선재는 조선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 황후 "효"왕비와 덕혜옹주 그리고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가 살았던 곳이라는데 망해가던 나라의 설음이 스며있는 탓일까? 뭔가 알 수 없는 숙연함이 낙선재 뜰 안을 봄바람처럼 서성거리고 있다.





낙선재를 나와 이제 막 연 초록빛 새순을 매단 나무 가지들의 푸른 영접을 받으며 부용지(芙蓉池)로 발길을 옮긴다.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일본이 우리나라 역사와 전통문화를 짓누르기 위해 창덕궁 이름을 궁궐 이름 대신, 비밀스러운 정원이라는 뜻의 비원(秘苑)으로 불렀다는데 영어로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이라는 그 이름을 얻게 만든 정원이 바로 창덕궁의 후원 부용지(芙蓉池)와 부용정(芙蓉亭)이었다고 한다.
 



창덕궁 “부용지”는 땅을 상징한다는 네모 난 연못 속에 하늘을 상징한다는 둥근 섬을 품에 안고 “부용정” 정자를 거느린 가장 한국적인 정원답게 문자 그대로 환상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잠시 동안의 심 호홉으로 푸른 숲 냄새 피톤치드 향이 배어있는 비원(秘苑)의 맑은 공기를 마셔본 후 금마문을 지나니 한번 통과하면 절대 늙지 않는다는 통 돌로 만든 불로문(不老門)이 나타난다.




진시황도 이루지 못한 그 불로(不老)의 꿈을 과연 이 작은 불로문이 이루어줄 수 있을까?

소망하는 여린 마음으로 불로문을 지나니 지조가 굳고 깨끗한 군자의 덕을 연꽃에 빗대어 이름 지었다는 연못 애련지가 아름다운 정자 하나를 껴안고 늘어진 벚꽃 아래에서 사색하고 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함께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멋을 가지고 있는 창덕궁~! 자연과 공존하겠다는 조상의 얼이 깃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창덕궁을 언제라도 이처럼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우리는 정말로 복 받은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된지 이제 10년이 되어가는 창덕궁 숲길에는 아직도 요한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가 감미롭게 연주되고 있었지만 밀려오는 신록 앞에 어쩔 수 없이 물러가야하는 봄은 노란 꽃의 배웅 속에 허정허정~ 그렇게 계절의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