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연미정(燕尾亭)
강화도 월곶돈대에 있다는 정자, 연미정(燕尾亭)을 찾아 나선다.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강화 인삼센터 휴게소 쪽으로 우회전
해안도로를 따라 약 4킬로 정도 북쪽으로 달리면
둥그런 성곽이 둘러쳐진 월곶돈대를 만날 수 있다.
[월곶돈대]
강화도 해안에 구축된 방어시설, 5진(鎭) 7보(堡) 53돈대(墩臺) 중 하나라는
바로 이곳 월곶돈대 안에 작은 정자, 연미정(燕尾亭)이 숨어있다.
[연미정]
한강과 임진강의 두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두물머리 모양이
마치 "제비(燕) 꼬리(尾)"를 닮았다 하여
연미정(燕尾亭)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이 정자는
당초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안에 있었으나
[연미정 느티나무]
몇 년 전, 민통선이 200여미터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이제는 아무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명소로 변했다.
월곶돈대 성곽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강 건너 저 멀리로 북녘 땅, 개풍군이 아른아른 눈에 들어온다.
[개나리 너머로 보이는 북녘땅]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의 남북분단의 서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굽이굽이 천리 길을 달려온 한강과
휴전선을 가로질러 근 5백리 길을 흘러온 임진강이
한 몸이 되어 유유히 서해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옛날 서해바다에서 한강을 통해 서울로 들어가려는 배가
만조시간을 기다리면서 잠깐 쉬어가던 쉼 터였다는 연미정은
한강하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어
사방팔방으로 눈에 들어오는 조망이 그지없이 빼어나다.
그래서 한밤 중, 두둥실 보름달이 떠오를 때
연미정에서 가져보는 달맞이가 강화 팔경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였다는 연미정은 또한~
역사적으로 뼈아픈 순간도 겪었다는데~
지금으로부터 380여년 전인 1627년의 정묘호란 때~
강화도에 피난 나왔던 인조임금이
청나라 힘에 밀려 굴욕적인 강화조약(講和條約)을 체결했던
비운의 역사 현장도 바로 이곳 연미정이었다고 한다.
[연미정 느티나무]
한강을 굽어보는 절묘한 위치에 세워진 연미정을
떠받들기라도 하듯~
정자 양쪽에는 500년이 넘었다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자를 감싸고 있어 그 정취를 더해 주고 있다.
이 연미정은 삼포왜란 당시 큰 공을 세운
황형(黃衡)이라는 장군에게 조정이 하사한 정자라는데~
이 정자를 하사받은 황형 장군의 후손들이
대대로 이 곳 월곶리 연미정 지역에 터를 잡은 이후로
지금까지도 일부가 이 주변에 살고 있다고 한다.
월곶돈대 성곽을 빠져 나온 내리막 길에
옛날 화남 고재형이라는 한 선비가 길을 떠났다가 돌아와
이곳 연미정에 올라 썼다는 칠언절구의 한시가 세워져 있다.
" 연미정고이수중(燕尾亭高二水中)
연미정 높이 섰네 두 강물 사이에
삼남조로남전통(三南潮路欖前通)
삼남지방 조운길이 난간 앞에 통했었네"
" 부부천범금하재(浮浮千帆今何在)
떠다니던 천척의 배는 지금은 어디 있나
상시아조순고풍(想是我朝淳古風)
생각건데 우리나라 순후한 풍속이었지"
제비꼬리를 뜻하는 연미정(燕尾亭)이라는 이름 탓일까?
연미정 추녀에서 자꾸 제비꼬리 모양이 연상되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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