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청산 식물원
포항시 북부 청하면에는 “기청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민간 식물원이 있다.
식물원은 대부분 국가나 지자체, 또는 법인에서 운영하는데
개인식물원이라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기청산식물원, 수목원으로 들어서 본다.
“9월 중순에서 말까지 70,000송이의 상사화 석산이 피어오릅니다.”
라고 쓰여진 플래카드가 입구에 걸려 있다.
오~예 저절로 탄성 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금이 9월 하순이니 절묘하게 꽃무릇 개화 시기를 맞춘 셈이다.
그러나 플래카드에 있는 꽃은 분명 “꽃무릇” 석산인데
문구에는 “상사화” 석산이라고 잘못 쓰여있다.
[1980년 당시의 식물원주변]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 후 고향에 내려온 이 수목원 원장님이
수목원의 전신인 기청산농원을 1969년에 개설했다고 하니
첫 삽을 뜬 후 어느새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1980년대 찍은 사진을 보니 주변이 온통 과수원과 논밭이다.
[현재의 식물원주변]
1986년에 폐교된 청하중학교 터까지 인수 후
현재까지 수목원을 운영하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수익을 얻지 못했다니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식물원 배치도]
입구에 게시된 수목원 배치도를 보니
양치식물관찰원을 비롯 야생화관찰원, 울릉식물관찰원 등의
관찰원들과 식용식물원 등 15개의 주제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자생식물 번식 포자실, 야생화 생산 포자실 등도 있다.
[꽃무릇]
수목원 오솔길이 시작되는 초입에서
붉은 꽃을 활짝 피운 한 무더기 꽃무릇이 반갑게 영접해 준다.
청량한 새 소리가 요란한 초록빛 숲으로 기어든 오솔길이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 나서는 길인 양 잔잔한 설레임을 준다.
[운지버섯]
숲길 고목나무에 활짝 피어오른 운지버섯이 꽃보다 아름답다.
곳곳에 세워진 시를 읽으며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청산의 왕목, 낙우송]
"기청산의 왕목(King Tree)을 알현하고 가라."는 팻말을 따라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거대한 “낙우송”을 만난다.
주변 택지개발사업으로 벌목 위기에 처한 나무를
원장이 3억원을 투자해 낙우송이 심어진 땅을 매입하여
3억원짜리 나무라는 팻말이 “낙우송” 옆에 세워져 있다.
[낙우송 뿌리]
낙우송 아래에 무수한 뿌리 돌기가 솟아올라 있다.
마치 500나한(羅漢)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몰려든 모습으로 보이는 이 돌기들은
낙우송 뿌리가 숨을 쉬기 위해 솟은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항상 읽어도 좋은 나태주시인의 “풀꽃”시를 지나서
[법정스님 의자]
볍정스님이 생전에 사용했다는 작은 나무 의자를 만난다.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말라 ~
하나가 필요할 때 둘을 갖지 말라
그 하나마저 잃어 버린다.“고 설법한
법정스님의 무소유 철학을
삐툴빼툴 비트러진 나무 의자가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
[맥문동꽃]
보랏빛 맥문동꽃도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당초 중학교 교편을 잡고 있던 원장이 취미처럼 시작한 농사가
이제 3대에 걸쳐 수목원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자연을 사랑하는 원장선생의 집념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꽃무릇]
울릉미역취, 섬초롱꽃, 말오줌나무 등을 만나며
경북지방과 울릉도 지역의 멸종위기 식물 전시원을 지나
알뿌리 식물전시관의 꽃무릇 군락지로 들어선다.
초록빛 숲 아래 활짝 핀 꽃무릇꽃들이~ 출렁출렁...
산불처럼 거센 붉은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석산이라고도 부르는 이 꽃무릇은 수선화과에 속하는 풀로
9~10월 초가을에 붉은 꽃을 피우고 꽃이 진 후에 잎이 나오며
상사화는 잎이 먼저 나와 사그라진 후~
7~8월 여름에 연분홍 꽃을 피운다고 한다.
꽃무릇은 꽃이 먼저 피고 상사화는 잎이 먼저 나오지만
둘 다 모두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꽃무릇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며
상사화의 꽃말은 “그리움”과 “애틋한 사랑”이라고 한다.
이 꽃들에 대한 전설로는
어느 스님이 속세의 한 처녀를 짝사랑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은 후 그 무덤가에 상사화가 피었다는 설도 있고
스님을 사모하던 한 처녀가 상사병으로 죽어
그 넋이 상사화꽃으로 피어났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 그냥
꽃만 보려 마시고
꽃과 함께 사귀셔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꽃을 닮아
꽃마음이 되지요.
꽃다워지지요.”
포항의 북쪽 맑고 푸른 땅에 한 식물학자가
근 반세기 동안 초지일관 일구어 놓은 기청산식물원~!
그렇게 화려하지도 반듯하게 잘 가꾸어 지지도 않은
평범하면서도 소박한 우리네 서민의 일상과도 같은 곳이지만
때 묻지 않은 새 소리가 꽃으로 피어나고
싱그러운 바람결이 피톤치드 뿜는 초록빛 나무로 자라나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 한국적 식물원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 당신은
꽃다운 인간입니다.
나무와
소리없이 대화를 나누는
당신은
순간순간 신선입니다.
기청산의 숲은
풀꽃과 사랑에 빠져보는 곳
나무와 우정을 나누는 곳~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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