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유배문화 체험촌
조선시대 당시 유배라는 형벌제도가 시행되면서
유배지 중 하나로 선정된 지역이 포항시 장기읍이다.
바로 그 장기읍에 유배문화체험촌이 세워져 있다.
[장기 유배문화 체험촌]
죄수를 멀리 보낸다는 뜻의 유배는
죄의 형량에 따라 유 2천리, 유 3천리 등으로 구분되는데
장기유배지는 유 3천리 지역에 해당되는 곳이다.
[유배인 우마차]
죄를 지어 유배를 떠날 때 소요되는 유배 비용은
죄인 스스로가 부담해야 하며 노비 동반은 허용했다고 한다.
이곳 장기로 유배를 오려면 서울에서 남태령을 넘어
안성과 충주, 문경, 상주, 영천와 경주를 거쳐
9박 반나절을 걸어 왔다고 하니 멀긴 정말 멀다.
유배인이 도착하면 머물 곳과 보살펴 줄 사람 선정 등을
장기현감이 책임 지었고
한 달에 두 번씩 유배인 동태 감시를 했다고 한다.
이곳 장기엔 149회에 걸쳐 총 211명이 유배를 왔는데
그중에 다산 정약용과 우암 송시열도 들어 있다.
체험촌에 세워진 이야기 벽 중, 다산의 벽을 읽어보니~
[다산 정약용 이야기벽]
다산 정약용 선생은 “신유박해”로 불리는
천주교 박해사건으로 장기에 유배를 오게 되어
이곳에서 7개월 10일, 220일을 지내다가
전남 강진쪽으로 유배지를 옮겼는데
다산 선생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실학자답게
일반 백성들에게 많은 실용적 도움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유배인 생활 디오라마]
어부들이 칡넝쿨로 만든 그물로 물고기를 잡다가
물고기를 자주 놓치는 것을 보고
무명, 명주실로 그물을 만들어
소나무 삶은 물에 담갔다가 사용하게 한 일화도 전해진다.
[다산 거처 디오라마]
장기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보았던 백성들의 생활이
“목민심서”를 저술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성리학의 대학자로 존경을 받던 우암 송시열 선생~!
정약용선생이 유배오기 120년 전에
[우암 송시열 이야기벽]
서인정권이 남인정권으로 급격하게 바뀐
“기사환국”이라는 정권의 대변화 속에서
예송논쟁에 휩쓸린 서인 소속 송시열 선생도
이곳으로 유배를 왔다.
이 지역에서 4년간 유배 생활을 한 송시열 선생은
유배기간 중에도 많은 후학들을 가르쳤는데
송시열선생이 거처하며 가르켰던 자리는
이곳 유배문화체험관 위치가 아니라
현재 장기 초등학교가 있는 위치라고 하며
그 거처를 제공했던 주인은 송시열 선생의 가르침 덕분에
나중에 장기현의 훈장이 되었다고 한다.
[송시열선생 디오라마]
송시열 선생 거처가 학당이 되고 그 학당이
지금의 장기 초등학교가 되었다고 하니
역사는 계속 이어지는가 보다.
[ 또아리 담장 화장실]
또아리 튼 담장을 거느린 옛날 화장실 모습을 뒤로하고
다음 코스인 장기읍성으로 걸음을 옮긴다.
포항시 장기면에 있는 장기읍성은
고려말 토성으로 쌓아졌다가 해적과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세종 때 석성으로 다시 개축한 읍성이다.
[장기 읍성]
성의 둘레가 약 3,664척에 높이는 12척이라고도 하고
길이 1,440m에 성문이 3개 있었다고도 하는 이 읍성 내에는
겨울과 여름에도 마르지 않은 우물 두 곳과
연못 두 곳이 있었다고 하며~
[장기 읍성]
해발 252m의 동악산에서 해안 방면, 동쪽으로 뻗은
지맥 평탄면에 말굽 모양으로 축성한 읍성이라고 한다.
유배문화체험장과 장기읍성을 둘러보며
다산 정약용 선생과 우암 송시열 선생의 흔적을 되새겨보고
여행까지 했으니 그저 뿌듯하고 즐거운 마음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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