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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공의 글사랑/회사사보 투고

아름다운 뺄셈의 삶을 생각하며

by 전태공 2011. 12. 17.

아름다운 뺄셈의 삶을 생각하며

 건설처  전 상 열

 

“한사랑 마을”을 찾아...

중부고속도로 광주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초월면으로 달려가는 국도변 들녘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살랑살랑 소슬바람과 놀고 있었다. 중증장애아 요양시설인 "한사랑 마을"에 봉사를 가고 있는 풍성한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스테레오에서는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이 애절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질퍽하게 밀려와 있는 가을 속을 이십여 분 쯤 달렸을까? 무갑산 줄기 산자락 아래 납작 엎드려 졸고 있던 하얀색 건물 두 개가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배시시 눈을 부비며 나타났다. 바로 다섯 살에서 24세까지의 중증장애아 약 150여명이 수용되어 있다는 한국복지재단에서 운영중인 중증장애아동 요양시설 "한사랑 마을"이었다.

 

“솔로몬 방” 아이들...

오전 10시 30분경~! 한사랑 마을 원장으로부터 봉사활동에 따른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각방으로 한사람씩 배치되기 시작했다. 내가 배치된 곳은 2층에 있는 솔로몬방이었다. 이 방에는 일곱 살에서 열 서너 살까지의 뇌성마비와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중증 장애아 8명이 온 몸을 비비꼬면서 휠췌어에 앉아 있었다. 자원봉사를 나왔다는 아주머니 네 분도 이미 솔로몬 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자기 스스로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들은 모두 몸에 이런저런 보조대를 착용하고 있었고 말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련이 심하여 온몸을 계속 뒤틀고 있는 아이도 있었고 척추 후만증으로 숙이기 싫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휠췌어에 앉아 있으면서도 벨트를 하고 있어야 할 정도로 장애가 심한 중복장애아들이었다.

 

“명준아~! 명준아~! 제발~ 밥 좀 한번 씹어봐”

11시 30분경 드디어 점심식사 급식이 시작되었다. 스스로 수저조차 들 수 없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주고 목욕을 시켜주는 것이 오늘 봉사의 핵심이었다. 내가 점심을 먹여야 하는 “명준”이는 뇌성마비가 심한 아이었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입에 넣어주는 밥을 씹지 못해 계속 밀어 넣어주는 밥에 밀려 목으로 넘어오는 밥만 무감각하게 삼키는 그런 아이였다. 밥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꾸역꾸역 밀어 넣는 것이라고 표현해야 옳았다. 입에 가득 차있는 밥을 밀어내면서 숟가락으로 계속 집어넣어주는 밥과 국의 절반은 다시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명준”이가 계속 흘리는 음식을 쳐다보다가 어느 사이 내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명준아~! 어떻게 한번 우물우물 씹어볼 수 없겠니? 가볍게라도 좋으니 어디한번 네 스스로 좀 씹어 봐~! 응~! 명준아~!” 눈시울을 붉히며 내가 마음 아파해 하는 표정이 재미있었을까? “명준”이는 배시시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마냥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짜짱과 참치통조림 그리고 으깬 김치로 비빈 밥 한 공기를 먹이는데 무려 한 시간이나 걸렸다. 남에게 밥을 먹인다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드는지 정말 몰랐다. 아~ 내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단순한 그 능력 하나만 가지고도 이 얼마나 고마워해야 할 일인가~!

 

몸이 뒤틀려있는 저 아이를~ 어떻게 안아야 하지?

천신만고 끝에 밥을 다 먹이고 나니 12시 50분이 넘어 있었다. 이제 일주일에 한번씩 한다는 장애아들의 목욕전쟁이 시작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자원봉사 아줌마들이 목욕을 시킬 수 있도록 휠췌어의 장애아들을 방바닥에 옮겨 옷을 벗긴 후 목욕탕으로 옮기는 일과 목욕을 마친 아이를 다시 옷을 입혀 휠췌어에 옮기는 일이었다. 아이들을 안아서 옮기는 일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온 몸이 뒤틀려있는 아이를 어떻게 안아야 불편해하지 않을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다리를 반듯하게 안으면 뒤틀린 손이 눌려 아파해 할 것 같았고 손을 반듯하게 안으면 꼬인 다리가 짓눌려 고통의 비명을 지를 것 같았다. 안아야 할 때나 바닥에 놓아야 할 때 조마조마하며 아이들의 표정을 잘 살펴야했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여 물어볼 수도 없고 아이들마다 뒤틀려있는 상태가 모두 제각각이니 여덟 명 모두 안아야 할 방법과 조건이 다 틀렸다.

 

아이들을 하나씩 이리 저리 옮기면서 또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이들이 너무나 가엽고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여린 탓이었을까?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또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한편으론 화도 났다. 왜~! 이 아이들이 이렇게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야한단 말인가~?. 목욕탕 바닥에 한 아이를 조심조심 살짝 내려놓으면서 “아이야~! 얼마나 힘이 드니? 무척 불편하지?”하고 눈으로 물어보았다. 그러나 내 눈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의 눈은 그저 고맙다는 듯, 천진스러운 표정으로 눈만 깜박거려줄 뿐이었다. 오랜 시간 고통을 겪어온 아이들은 이제 그 아이들 나름대로 그들만의 행복과 웃음을, 그들만이 느끼는 사랑에 익숙해 있는 듯 했다. “그래~! 아이들아~! 너희들 하나하나에도 모두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너희들만의 소중한 생명과 귀한 삶이 있겠지~! 꿋꿋이 열심히들 살아가거라~!!”

 

아름다운 뺄셈의 삶을 생각하며...

하루 동안, 식사보조와 목욕봉사를 마치고 한사랑 마을을 빠져 나오는 발걸음은 무척 무거웠다. 그래~! 정말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살자~! 남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질 못하다고, 남보다 더 많이 배우질 못했다고, 아쉬워하거나 욕심내지는 말자~! 내 스스로 보고 듣고 먹고 이야기 하고 움직이며 걸을 수 있다는 이 능력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가~!

 

“한사랑 마을”의 봉사는 육체적으로 힘이 많이 들었지만 내가 감사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내가 행복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확실하게 가르쳐주었다. 몇 시간 동안 내 이마의 맺혔던 구슬땀 대신 마음속으로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생각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 보았다. “아~! 그래,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했던 내가 가진 사소한 능력들을 이제 하나씩 뺄셈을 하면서 살아보자~! 그리고 그 뺄셈을 한만큼의 장애아가 되어 장애아의 눈높이에서 역지사지해보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에 더 많은 더하기를 하며 살아보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