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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공의 글사랑/회사사보 투고

영화 『취화선(醉畵仙)』을 보고

by 전태공 2011. 12. 17.

영화 『취화선(醉畵仙)』을 보고....

때국물이 흐르는 거지의 모습으로 두들겨 맞는 장승업의 어린 시절들이 숨가쁘게 스쳐 지나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이어 단거리 선수처럼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와 함께 화면들이 스피디하게 변환해 나가고.. 장승업의 거침없는 붓이 스크린에 하나 가득 먹물을 뿌려대며 담채색 수묵화를 그려 나간다. 술에 취하고 그림에 취하고 사랑에 취한 불꽃같은 천재화가의 그림들이 한폭 두폭 스크린 위에 가득가득 펼쳐져 온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영화관 속의 모든 사람들이 장승업의 붓끝을 통해 화선지에 스며들어가는 먹물처럼, 그렇게 영화 속으로 몰입되어 갔다. 어느 틈에 나도 스크린 속으로 뛰어 들어와 신들린 듯이 휘둘러 대는 장승업의 호쾌한 붓 놀림 옆에 서 있기도 하고, “그림의 반복은 죽음일 뿐”이라며 일일신 우일신을 외치고 “일획이 만획”임을 절규하는 장승업과 함께 한국화의 미학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흰 눈이 내리는 갯벌, 하늘을 뒤덮는 되새 떼, 하늘거리는 갈대 숲, 선암매의 매화꽃, 병산서원 등 우리 산하의 소박한 아름다움들이 스크린 위로 오버랩핑 되어 다가오자, 『취화선』은 한 폭의 화선지 위에 그려진 수묵화로 승화되어 있었다.

 

조선후기의 격변기를 막힘 없는 붓끝으로 살아온 오원 장승업의 삶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낸 이 영화의 영상미는 우리의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문득 깨닳게 해 주었다.

 

서양화에 비해 뭔가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산수(山水), 인물(人物), 화조영모(花鳥翎毛), 기명절지(器皿折枝), 사군자(四君子)등 동양화의 세계에 뛰어 들어 스크린 속에 한국화를 재현해 내며, 우리 것의 참 아름다움을 발견케 해준 영화 『취화선』∼!

 

구속받기를 철저히 거부했던 천재와 광기의 화가 장승업의 호방한 필묵법과 묘사력으로 그려낸 동양화 작품세계를 여행케 하고 한국의 근대미술사와 우리 나라의 암울했던 사회상, 정치적 격변기도 함께 보여 준 『취화선』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우리 백의민족의 미학을 수묵화의 영상미로 그려낸 이 영화가 깐느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는 낭보는 이제야 세계가 우리 것의 참 아름다움을 인정해주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