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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공의 글사랑/회사사보 투고

태안(泰安) 예찬(禮讚)

by 전태공 2011. 12. 2.
태안(泰安) 예찬(禮讚)
 
태안화력에 처음 부임하던 2월, 그 날은 전날 내린 눈으로 온 천지가 하얀 도화지로 변하여 지천명(知天命)의 내 나이에도 소싯적, 동심(童心)의 세계로 달려 가고픈 제법 낭만적인 그런 날이었다.

꼬부랑할머니가 꼬부랑꼬부랑 넘어 갔음직한 눈 덮인 황촌고개를 넘는 내 앞에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결코 범접(犯接)하지 못할 아름다움으로 나타났던 길섶 산등성이의 소나무 숲들! 삼림욕장(森林浴場) 깊은 숲에서 나온다는 신비의“ 피톤치드”향처럼 향긋하게 코에 스미던 맑은 냄새들! 거기에 더하여 잠시 후에 도착한 새로운 보금자리 태안발전소는 대단위 화력발전단지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청정(淸淨)하고 잘 조화된 아름다움으로 눈앞에 나타났었다.
 
태평(泰平)하고 편안(便安)한 고장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곳 태안(泰安)은 처음 부임한 나에게 이처럼 상큼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와, 나에게 앞으로의 그곳 생활이 이런 저런 즐거움으로 가득 넘치리라는 것을 예고해 주는 듯 했다.

넌덜머리 나는 소음과 오염, 그리고 정서적인 빈곤에 찌들어 있는 대도시와는 달리 해안국립공원(海岸國立公園)으로 지정될 만큼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한 주변지역 풍광들과, 전혀 타산적으로 보이지 않는 순박한 그곳 사람들의 훈훈한 인심들로 나는 너무나도 빨리 태안에 정이 들어갔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붉은 진달래들이 산 자락마다 산불을 일으키는 봄이 오니.. 크고 작은 야산마다 취나물, 두릅, 원추리 등 온갖 산나물들과 함께 앙증맞은 어린아이가 하늘을 향해 죽 펼쳐낸 주먹손 모양으로 겸허하게 고개 숙이고 있는 고사리들이 지천으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밀림과도 같은 잡목 숲 가시덤풀 속을 헤쳐가며 처음 꺾어 보는 고사리가 신기하여 고사리를 찾아 헤매다 보면 어느 틈에 올라와 버리곤 하던 이름 모를 야산 정상들~ 배고픔도 잊고 누비던 태안주변의 야산들은 고사리가 그렇게 자라나고 있다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임을 위해 소월(素月) 시(詩)처럼 진달래꽃이 지고, 초록물감을 쏟아 놓은 듯 주변 산야가 온통 푸르게 변해 가는 오뉴월이 되니 태평(泰平)하고 편안(便安)한 태안 인심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기름지고 청정한 그 곳의 토양에선 동구 밖 미나리 밭에서의 소나기 소리 같은 개구리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들녘마다 상치, 쑥갓, 오이, 땅콩 등과 어우러져 그곳만의 특산물인 육쪽 마늘들이 알알이 여물어 가기 시작했다.

바다의 살찐 꽃게들이 그물마다 줄줄이 달려 나와 전국의 식도락가들에게 감칠맛을 보일 때쯤이면.. 주변의 물 맑은 저수지들과 수로들에서 낚싯대에 줄줄이 올라오던 통통하게 살찐 붕어, 잉어들과 갯바위 아래에서 물고 늘어지던 우럭, 노래미 같은 바닷고기들이 또 나 같은 꾼들을 즐겁게 해주기 시작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크고 작은 수로들과 해맑은 물을 가득 안고 있는 이름 모를 저수지들, 그 곳 물가 수초 가까이에 대를 드리우면 어쩌면 그렇게도 많은 물고기들이 물려 나와 주던지~! 또 발전소 옆 하역부두에서 릴에 매달려 나오던 그 힘 좋은 우럭들과 안흥 신진도항에서 출항한 15톤 낚싯배 위에서 걷어올리던 광어의 몸부림 손 맛 또한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필수품이 된 초고추장과 풋고추, 마늘들은 항상 내 곁을 떠날 줄을 몰랐다. 아니 떠날 틈이 없는 것 같았다.

♪바닷가에~ ♬모닥불 피워놓고~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선남선녀들이 갯바위의 고동만큼이나 많이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몰려오기 시작하는 여름이 오면 태안반도 이곳 저곳에 은하수처럼 펼쳐진 해변에서는 온갖 생명들의 춤사위가 시작되곤 한다. 바지락, 동죽, 모시조개, 맛조개들이 펼쳐내는 갯뻘 속의 숨바꼭질 춤, 갯고동, 집게, 성게, 말미잘, 불가사리들이 엮어 내는 갯바위 위의 스포츠댄싱~! 반딧불이 맴도는 밤바다 해변에서 울리는 캠프파이어 키타선율에 맞춰 여름밤 하늘에 흐르는 긴 꼬리 유성의 폴카춤과 어우러져 태안의 여름은 또 그렇게 낭만과 추억들을 주저리주저리 엮어내 주기도 했다.

우럭의 씨알이 제법 커지면서 주둥이 뾰쪽한 학꽁치들이 바다 위를 향해 높이뛰기 시합을 시작하고 아람이 벌어져 가는 알밤 나무 옆의 잃어버린 할머님 댁과 같은 시골집 마당 위로 수백 마리의 잠자리 때가 맴을 도는 가을이 되면, 오동통하게 살이 붙은 대하들이 펄떡거리며 뭍으로 올라오고 또 이때쯤이면 모든 것이 여문 들녘 여기저기에 추수를 마친 육쪽마늘과 땅콩, 생강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가기도 했다.

그 아름다운 땅, 태안에서 서울 삼성동 사무실로 올라온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봉은사가 내려다 보이는 12층 창밖에서 아까부터 맴을 돌고 있는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깊은 상념에 젖어 있는 내 마음을 자꾸만 태안 땅으로 데려가고 있는 느낌이다.
 
"모든 것은 일순간! 지나가 버리나, 지나가 버린 것은 다시 그리워진다"는 푸쉬킨의 시처럼 아름다운 태안의 4계가 너무 그립다. 나의 정서적인 세계를 풍성하게 살찌워 주었던 그림 같은 그곳에서 2년간을 살면서 배워 보려 했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그 서시(序詩)의 마음을 이제 어디에서 찾아보아야 하나.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는 또 다시 서해안고속도로를 올라 타고 달려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신비로운 태안의 자연이여! 태안의 아름다움이여! 영원하여라!